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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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57 화 ★ 크리스마스 이브

wy 0 2019.06.15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렸다. 

 

방주는 며칠 전 풀려났고 선희와 손중기의 무고 사건도 경찰에서 불기소 의견으로 정리했다.

 

서준은 한 해를 잘 마무리한 뿌듯한 기분으로 선희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려고 인터넷 쇼핑몰을 찾았다.

 

올 해는 추위가 일찍 찾아와서 모자 달린 패딩이 유행인데, 넓은 가로 줄을 박은 옷들이 모두 번데기 같이 똑같고 선희에게 어울릴 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가 노란색 티셔츠를 좋아하니 병아리색 영국제 캐시미어 자켓이 좋아 보였다.

 

가격을 잘 보니 120만원으로 영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

 

얼른 캐시미어 목도리 쪽을 클릭했다.

 

베이지색 긴 목도리가 선희에게 어울릴 듯했고 35만원이라고 써있었다.

 

가격이 조금 센 편이라 같은 색의 조금 짧은 목도리를 찾았다.

 

버버리 상표인데 좀 흔한 느낌도 들었지만 젊은 여성들은 메이커를 좋아하니까 이 정도면 되었지 싶었다.

 

선희가 목에 두르고 좋아할 모습을 떠 올리니 기분이 좋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오늘 저녁 8시까지 선희 집으로 배달 되는 택배를 간신히 찾았다.

 

오늘의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위해서는 로켓 택배가 아깝지 않았다.

 

출소 후 전화를 한 방주에게는 년 말에 만나자며 이번 크리스마스는 장로님과 집에서 잘 쉬라고 했다.

 

그 동안 몹시 힘들었을 방주를 위함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방주에 대한 마음이 정리가 안 되어 선뜻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서준은 머리 속에 남아있는 CCTV의 영상을 흔들어 지웠다.

 

방주의 큰 키에 가려서 선희의 반응은 볼 수 없었지만 잠깐의 포옹 장면은 분명히 있었고 키스를 했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선희가 적극적으로 저항한 것 같지도 않았고, 두 사람은 곧 바로 베로나를 같이 나갔다.

 

목사로서 도저히 하면 안 되는 짓을 했지만 서준은 자신이 방주를 부러워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 머리를 저었다.

 

인터넷에서 어렸을 때 듣던 '팻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노래를 찾았다.

 

유튜브에는 '빙그로스비'의 노래가 더 많지만 팻분의 분가루가 퍼지는 듯한 부드러운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서준이 주일학교 다닐 때 가장 많이 듣던 곡이다.

 

20년 전의 겨울은 지금보다 추웠다.

 

크리스마스 4-5일 전부터 난로도 없는 텅 빈 교회당에 나와서 추위에 곱은 손가락을 입김으로 호호 불며 하얀 벽에 색종이를 오려 붙이던 시절이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서준의 키만한 아담한 것을 세우고 찬송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노엘 노엘’ ‘그 맑고 환한 밤 중에같은 곡을 연습하고 부르던 맑고 조용한 밤이었다.

 

매년 어머니는 강대상에서 가까운 자리에 앉아서 우리들 노래를 들으셨고 그날 밤 산타의 선물은 늘 서준이 갖고 싶던 물건이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명동이나 충무로를 걸으면 여기저기서 트윈 폴리오의 실버벨노래 소리가 들렸고 군밤장수의 군밤에서 나오는 허연 김과 구세군의 종소리가 잘 어우러져 추운 날씨를 잊게 했다.

 

지금은 저작권 문제로 노래를 함부로 틀면 안 된다는 인식이 한편으로는 거리를 좀 삭막하게 만든 느낌도 있다.

 

유튜브에는 트럼프가 엄지를 세우고 웃으며 올해는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미국 국민에게 돌려 준 자랑스러운 해라며 자기 자랑을 하는 사진이 있다.

 

세계적으로 크리스마스가 휴일이 아닌 나라는 이슬람을 제외하고는 일본과 중국 정도인데 중국은 공산주의고 일본은 기독교 인구가 1%도 안 된다.

 

한국도 요즘은 크리스마스보다 새로 들어온 핼로윈같은 행사가 더 아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맑고 환한 밤 중에 베들레헴의 구유에서 태어난 어린 예수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각종 귀신, 도깨비해골 가면 놀이에 밀리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핼로윈 행사를 보면 얼굴을 찡그리실 것 같았다.  

 

팻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끝날 때쯤 서준은 문교수의 ‘21C 기독교 광장생각이 났다.

 

지난 번 그와 만날 때 잠깐 옆에서 보았지만 시간을 내서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니케아 호수 아래 잠겨 있는 성당에 대한 소식이 궁금하기도 했다.

 

21C 기독교 광장에 들어가니 알림 난에 빨간색 글씨가 눈에 띠었다.

 

-안녕하세요?  문익진입니다.

 

저는 올해 마지막 주일인 12/31일 오전 예배를 끝으로 Y대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새해에는 ‘21C 기독교광장에서 계속 뵙겠습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  

 

문교수가 아직 은퇴를 할 나이는 아닌 데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전화를 걸어 볼까 하다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좋은 일도 아닌 데, 우선 21C광장에 실려 있는 글들을 찬찬히 읽어 나갔다.

 

문교수의 글은 서준이 그동안 읽었던 신앙 서적들과는 많이 달랐고, 목사가 이런 말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해도 되나 하는 우려가 들었다.

 

특히 21C에는 보수, 진보 신학을 뛰어 넘어 새로운 기독교의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가슴 두근거리는 신선함을 느꼈다.

 

이런 글들을 몇 개 읽으니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서준은 여유 있게 퇴근을 준비했다.

 

선희가 그 동안 고마웠다며 크리스마스 이브에 자신을 집으로 초대했을 때 서준은 사양하지 않고 응했다.

 

이번에는 뉴욕 치즈케익을 좀 더 큰 판으로 사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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