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이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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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백건우: 쇼팡의 녹턴으로 담담히 우리를 위로해 주다.

wy 0 2019.12.1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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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백건우, 사람들은 그를 ‘건반 위의 구도자(求道者)’라고 말한다.

 

얼마 전 부인 윤정희선생의 안타까운 알츠하이머 소식에 그의 팬들은 우울하다.

 

위로를 받는 대신, 오히려 쇼팡의 녹턴으로 담담히 우리를 위로해 주는 백건우, 그는 피아노를 치는 철학자다.

 

그가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 모두 인생의 구도자입니다.”

 

백건우의 쇼팡 녹턴 음악회가 12월 7일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다.

 

녹턴 21곡 중 12곡을 인터미션도 없이 1시간 20분 넘게 들려주었다.

 

어느새 70이 넘은 백건우의 피아노는 여전히 청중의 몰입을 담보했다.

 

연륜에 따른 예술적 기품에 아직도 넘쳐나는 에너지가 놀라웠다.

 

며칠 후 서초동 식당에서 와인 한 잔을 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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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그동안 살아온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백: 처음 뉴욕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고, 유럽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이후에 이념의 장벽이 무너지면서 동구라파, 러시아, 중국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참 시대를 잘 만난 것 같아요.

 

또 한국에서 많이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음악을 통해서, 음악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보람 있었지요.

 

사실 동양인으로서 서양에서 활동하기는 참 힘든 시대였는데 고비를 잘 넘기고, 전체적으로 저는 만족하는 편입니다.  

 

최: 피아노 연주를 본격적으로 하신 지가 60년이 넘지요?

 

백: 뉴욕에 간 것이 60년이 되지요.

 

최: 너무 스트레스가 많고 힘들어서 피아노를 그만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요?  

 

백: 있지요. 있지요.

 

외국에서 혼자 싸우다 보니까 너무 힘들어서, 이제 그만할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지요.

 

그런데 참, 음악이, 음악이 나를 안 놨던지, 내가 음악을 안 놨던지..

 

둘이서 헤어질 수가 없었어요. ㅎㅎ

 

사랑이라는 게 그런 건가 봐요.

 

헤어질려고 해도 헤어질 수가 없는 거…

 

최: 평상시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백: 특별히 하는 건 없어요.

 

근데 건강 관리라는 게 뭐든지 복잡하지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최: 많이 걸으시지요?

 

백: 네 저는 산책을 참 좋아해요.

 

기회만 되면 산책을 하니까..건강에 도움이 되고, 생각하는데 도움이 되고..

 

최: 지난 7일 쇼팽 녹턴, 늘 그렇듯이 피아노 소리에 푹 빠지는 연주였습니다.

제 오른쪽에 앉은 어떤 중년 여성은 녹턴 20번을 듣기 시작하면서 훌쩍거리더니 끝까지 멈추지 않았어요.

 

앞에 앉았던 원로 음악평론가 이상만선생도 연주가 끝나고 참 좋았다고 하더군요. .

 

쇼팡 녹턴 20번 -백건우 : https://www.youtube.com/watch?v=O2ay79Ws0nE

 

최: 녹턴 21곡 중 12곡의 연주 순서를 배열한 기준은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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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불란서 페스티발에서 녹턴 21곡을 다 해보자는 제의가 있었어요.

 

근데 제가 보기에는 그건 좀 무리인 거 같고, 11일 녹턴 6곡을 또 하니까 우선 겹치지 않게 했고요.

 

녹턴이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모습들이 있으니까, 항상 음악의 흐름을 생각하면서 튀지 않게, 그러면서 각 곡들이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배열을 한 거지요.

 

이것이 잘 못 되면 그 곡의 진미를 알 수 없으니까요.

 

최: 네, 12곡의 배열이 절묘한 것 같습니다.

 

화려한 곡 다음에 담백한 곡이 나오고, 듣는 사람의 귀를 배려한 거지요.

 

백: 그리고 13번 같은 곡은 워낙 드라마틱하니까 중간에 들어가기는 어렵지요.

 

그거 치고 나면 더 이상 칠게 없어요.

 

최: 그래서 7일 연주회때 앙콜을 안 하신 건가요?

 

백: 그것도 있고.. 저는 앙콜을 별로 안 좋아해요.

 

최: 그러시군요. 사실 청중들은 한 곡이라도 더 듣고 싶어하지만 연주자로서는 참 힘든 일이지요.

 

백: 아니 뭐 힘든 거보다도, 앙콜이라는 건 그냥 덤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효과적이고 잘 알려진 곡으로 하잖아요.

 

저는 그렇게 하는 것이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먼저 그 프로그램 자체가 훌륭해야 되고, 그걸로서 음악회에 메시지가 전달되고, 그 메시지를 가지고 사람들이 홀을 나가게 되길 원

해요.

 

앙콜을 하면 뭔가 섞는 거 같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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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  연주가 끝나고 사인을 받기 위해  몇 겹의 줄을 만든 팬들(2019 12 7  예술의 전당)

 

최: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7일 연주에서 쇼팡 20번 끝내고 인터미션은 아니고, 잠깐 무대 밖으로 나갔다 오셨는데, 한 1-2분 되었을까요?

 

왜 그러셨나요?

 

백: 그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그러니까 너무 계속 듣는 것보다 잠깐이라도 휴식을 하고 들으면 집중력에 도움이 되요.

 

최: 그러시군요 청중들을 배려하는 시간이었군요.

 

혹시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러 들어가셨나 했어요.

 

백: ㅎㅎ 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요.

 

이렇게 휴식하는 연주자가 없으니까요.

 

여하튼 1분 정도 밖에 안되었지만 이 시간이 듣는 분들에게는 좋은 휴식이 되었을 거에요.


80분 넘게 음악을 계속 듣는 거보다 집중력에 도움이 되지요.

 

최: 쇼팡 녹턴 20번은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시작할 때와 끝날 때 두 번 나오는 음악이지요.

 

그리고 11일 연주회 마지막 곡이 쇼팡 발라드 1번인데 이 곡도 그 영화의 명 장면에서 주인공이 치는 음악입니다.

 

백: 네. 그렇지요.

 

최: 영화 이야기를 하니까 윤정희선생의 안부가 더욱 궁금합니다.

 

이 영화도 같이 보셨겠지요?

 

백: 네. 그럼요...

 

최: 참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네요.

 

지금은 좀 어떠신가요?

 

백: 그래도 아직 건강한 편이에요.

 

알츠하이머는 아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병이지요.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요..

 

윤백 산책a.jpg

 

최: 산책은 좀 같이 하시나요?

 

백: 오른 쪽 무릅이 안 좋아서 잘 못하고 있어요.

 

수술을 몇 번 하려 했는데 아직 못 했어요.

 

최: 3-4년 전 뵐 때만해도 별 이상을 못 느꼈는데 그 전부터 증세가 있었나 봐요.

 

백: 네, 처음에는 본인도 가족도 믿기가 힘들었지요.

 

이 병은 시간이 지날수록 발병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아요.

 

최: 간혹 가족들을 잘 몰라볼 정도라고 들었는데 남편은 알아보시지요?

 

백: 네, 그런데…어떤 때는 저를 바라보는 눈 빛이 좀 불안해요.

 

 

최: 내년 10월에 슈만곡들을 한국에서 연주하시더군요.

 

그의 곡 중에서 트로이메라이, 저는 이곡이 참 좋은데, 이상하게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들었던 곡 같아요.

 

슈만이 1838년에 이 곡을 만들었으니까 제 DNA 어딘지에 오래 전 각인 되어 있는 지도 모르지요.

 

그 동안 수많은 연주자의 트로이 메라이를 들었습니다.

 

좀 어려운 질문이지만 이 곡, 트로이 메라이는 어떻게 처야 하는 곡인가요?

 

백: 음, 슈만에는 동심 같은 게 있어요.

 

슈만 자신이 그런 어린이 같은 순수함이 있었겠지요.

 

트로이메라이-호로비츠 https://www.youtube.com/watch?v=cnSvUjwvZZs 

 

 

최: 네, 트로이메라이가 원래 슈만의 피아노 모음곡 ‘어린이 정경’ 중 한곡이지요.

 

독일어 트라움 (꿈)에서 나왔으니까 아마 ‘꿈을 꾸다’ 정도가 되겠지요.

 

백: 네, 슈만의 세계는 굉장히 변화가 심하고, 본인이 겪은 고통스러운 악몽의 세계와 천국의 아이들 같은, 그런 세계를 왔다 갔다 했기 때문에, 트로이메라이는 정말로 순순한 평온한, 그러한 마음을 그릴 수 있어야겠지요.

 

저도 그 곡을 치기가 어려워요.

 

최: 그러시군요. 슈만은 브람스라는 후배 음악가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데 큰 공헌을 했지요.

 

슈만이 브람스의 클라라(슈만의 부인)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알고 있었을까요?

 

백: 네, 아마 알았겠지요.

 

그런데 그것이 어쩌면 브람스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감정과 비슷한 면도 있었을 거에요.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클라라가 원래 나이에 비해 굉장히 성숙했다고 해요. 

 

최: 클라라는 당시 대단한 피아니스트였고 작곡도 많이 했지요.

 

혹시 클라라의 곡을 하나 정도, 같이 칠 생각은 없으신가요?

 

백: 그렇게 되면 좀 다른 프로그램이 되겠지요.

 

재미있는 아이디어인데.. 따로 구상을 해야겠지요.

 

사실 클라라, 슈만 브람스의 음악을 함께하면 재미있을 것 같네요.  삼각관계 ㅎㅎ

 

최: 피아니스트로서 그 동안 수 많은 곡을 연주 하셨는데 현재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작곡가는 누구인가요?

 

백: 쇼팡, 아마 그래서 이번에 야상곡을 하는 거 같아요.

 

쇼팡 중에서도 특별히 야상곡이 어려웠어요.

 

최: 어려워요?

 

백: 네, 어렵지요.

 

왜냐하면 그 곡들이 참 예쁘고, 젊었을 때 많이 치잖아요.

 

근데 알면 알수록 참 깊이 있는 곡들이라 뭔가 불편했었어요.

 

최: 불편해요?

 

백: 네 그거는 뭔가 곡을 완전히 소화를 못 시켰기 때문에 불편했겠지요.

 

최: 독일 그라모폰에서 녹음까지 하셨는데 아직도 불편한가요?

 

백: 지금은 친구가 된 느낌이지요.

 

그 동안 노력을 많이 했지요.

 

사실 노력을 해도 어느 시기가 되지 않으면 그 곡들이 이해가 안되지요.

 

그런데 지금은 쇼팡도 그렇고, 그 곡들을 좀 이해할 거 같아요.

 

최: 슈만은 지금 불편한 게 없나요?

 

백: 있지요. 항상 있지요.

 

슈만은 아마 나중에도 불편할 거에요.

 

왜냐하면 슈만 본인이 자기 자신과 불편했거든요.

 

스스로 콘트롤이 잘 안되고 변화가 심하고..너무나도 따뜻한 사람이었나 봐요.

 

그러니까 자기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갔잖아요.

 

브람스는 병원에 오게 했지만 클라라는 못 오게 했지요.

 

슈만 클라라.jpg

슈만과 클라라

 

그래서 클라라가 한 동안 남편을 못 만나다가 슈만이 세상 떠나기 얼마 전에 병원에 찾아왔지요.

 

그때 슈만이 클라라를 너무나도 따스하게 쳐다 봤다는 기록이 있어요.

 

그리고 슈만이 정신병원에 들어간 이유가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무슨 해를 입힐까봐…

 

자기가 혹시라도…그래서 짐 싸가지고 정신 병원에 간 거지요.

 

최: 이번 윤선생의 건강문제가, 피아노를 처음 치기 시작한 이후, 백선생님의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요?

 

어쩔 수 없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 혹은 적응을 하면서 본인에게도 어떤 변화나 새로운 계획 같은 것이 있나요?

 

백: 저한테도 큰 변화가 올 거 같아요.

 

그 동안 못 한 것들, 젊은 연주자들과 챔버뮤직도 더 자주 하고, 젊은 피아니스트들을 좀 도울 수 있는 기회도 만들고 싶어요.

 

또 레코딩도 꾸준히  하면서 나름대로 제 음악 세계를 계속 키워 나가야겠지요.

 

이런 일을 계속 하면서, 좀 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음악회를 하고 싶어요.

 

최: 네, 그런 소통의 음악회가 앞으로 많이 열리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팬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시지요.

 

백: 뭐, 특별히 할 말이 있나요.

 

사실 몇 십 년 동안 가족같이 지냈는데 앞으로도 사랑해 달라는 말밖에 없지요.

 

최: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내년에 또 뵙겠습니다.

 

백: 네, 감사합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만남https://www.youtube.com/watch?v=LMcFmFS97w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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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무렵, 평창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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