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이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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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 : 다음 대통령이 진보 정당에서 나와도 필요에 따라 보수적 정책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국민에게는 보…

wy 0 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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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창한 5월의 어느 날, 여의도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국회와는 가까운 거리지만, 화려하거나 세련된 느낌은 없는 평범한 사무실이었다.

곧 정대철 대표가 방에서 나와 필자에게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소독제는 비치되어 있었다.)

 

호방한 풍모인 그는 대권에 가까이 갔었으나 때를 못 만난 정치인들 중 한 사람이다.

정일형 박사로부터 3대가 국회의원을 14번 했던 집안이고, 어머니는 막사이사이 상을 수상한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였던 이태영 여사이다.

 

정대표는 언뜻 선이 굵은 인상이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때는 코믹한 제스처와 함께, 진솔한 대화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의 주위에는 유능하고 심지가 굳은 인물들이 늘 포진하고 있다.  

그는 어쩌면 한국 정치사에, 거의 마지막 남은 낭만적 보스 정치인이 아닌가 싶다.

 

 

최: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 네, 감사합니다.

 

최: 먼저 호칭을, 예전 민주당 대표 최고의원을 하셨으니까 정대표님으로 하겠습니다.

이번 총선 결과가 어떤 분들에게는 당연했고, 어떤 분들에게는 당혹스러웠는데, 정대표님은 어떤 생각인지요?

 

정: 무었보다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빨아드리는 블랙홀이었지요.

야당으로서는 제대로 된 정권 심판론을 제기할 새도 없이, 국가적 위기인 코로나에 모두 함몰되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는 정치 지형이 바뀐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보수와 진보가 6대4정도였는데 이번에는 반대가 되었습니다.

20-30대가 더 진보가 되었고 특히 50대가 진보로 많이 바뀐 것이 큰 변화입니다.

 

세 번째는 여당이 잘해서 이긴 게 아니고 야당이 못해서 진 겁니다.

심지어 민심의 방향에 역 주행한 느낌이 좀 있었고요..

양당의 선거 본부장, 김종인 선생과 이낙연 전총리를 비교해 봐도 나이 차이가 많았지요.

 

최: 선거법 개정이 처음 의도와 어긋난 부분도 있었지요?

 

정: 네. 많이 아쉬운 부분은 선거법 개정을 했지만 그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군소 정당이 다 죽었습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세계적 위기 상황에서 우리 나라만 선거를 제대로 치른 점이지요.

어떤 외국 신문이 “한국은 방역 모델로 성공했을 뿐 아니라, 국가 위기 상황에서 치르는 선거에서도 성공적인 선거 모델을 만들었다.” 라고 칭찬했더군요.

 

또 이번 선거 결과만 보면 언뜻 지역주의가 여전히 강한 것 같지만 사실은 좀 다릅니다.

호남은 아직 아니지만 영남에서는 민주당 표가 예전보다 많이 나왔습니다.

지역 감정이 좀 약해진 것도 이번 선거의 큰 특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2년 후 대통령 선거에서, 어떤 자질과 능력이 있는 분이 대통령이 되야 할까요?

 

정: 우선 자질에 대해서는 3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시대적인 소명을 잘 알아야 합니다.

여러 생각들이 있겠지만 우선 남북의 평화 공존과 평화로운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

 

두 번째는 개혁을 통해서 좀 더 올바른 사회로 이 나라를 이끌 수 있는 사람.

세 번째는 보편적 복지를 중시하여 성장과 함께 빈부격차를 줄이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바람직하겠지요.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대통령은 무엇보다 정치적인 균형 감각이 중요합니다.

진보 정당에서 나온 사람이라도 필요에 따라 보수적 정책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보수와 진보가 다 있기 때문이지요.

 

정치적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도 어느 한 쪽에 집착하지 않고 균형 있는 정책을 전개해야 합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비교적 깨끗하고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한 사람 중에 나와야겠지요.

 

최: 남북 관계가 잘 풀리지 않고 있는데 정대표님이 보시기에는 어떤가요?

 

정: 평화 공존과 평화로운 통일이 대 전제이고 그런 방향으로 당연히 가야 합니다.

경제적으로도 북한의 노동력과 남쪽의 자본, 기술, 시장개척 능력을 합치면 큰 시너지 효과가 있지요.

 

한국의 경제적 미개척지가 북방, 즉 만주, 연해주, 몽골, 소아시아 등입니다.

이런 곳들을 북한을 통해 바로 접근하면서 공동 개발을 하면 발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남북 평화 공존이 확고해지면 소모적 군비 경쟁 등의 문제도 없어집니다.

이렇게 잘 되면 참 좋은데…잘 되어 가는 듯 했는데…

 

아직도 북한이 기본적으로 핵을 포기하겠다는 말을 공식적으로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핵이 적게는 20여개, 많게는 60여개 있다고 하는데 이게 큰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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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핵을 묵인한다는 것은 총을 차고 있는 사람하고 같이 여행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이 ‘이 총은 딴 사람 쏠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그 말만 믿고 같이 갈 수는 없지요.

 

질이 나쁜 사람인데요…결국 핵은 없애야 하는 게 기본입니다.

미국과 협력해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별 성과가 없습니다.

 

북한은 공산국가나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고 왕조 국가, 사이비 종교 국가입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신이나 교주로 70년을 받드는 나라입니다.

 

막스나 레닌은 권력 세습이라든가 수령 유일 체제 등은 봉건적 퇴폐 행위라고 규정했지요.

북한은 단 한 사람에게 2천5백만명이 최면이 걸려 있는 나라인데, 만약 같은 민족이 아니라면 벌써 관계를 끊었어야지요.

 

최: 아직도 북한 사람들이 그런 최면에 걸린 상태라고 보십니까?

 

정: 네. 적어도 그런 면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말썽꾸러기라도 같은 형제니까 잘 달래서 평화 공존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도 또 필요한 것이 균형 감각입니다.

그런 면에서 현 정부의 정책이 너무 북한의 의도대로 따라 주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물론 속 마음이야 있겠으나, 핵 문제에 별로 단호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어요.

 

즉 너무 경제나 통합에 대해서만 방점을 두지 말고, 핵을 없애지 않으면 같이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강력히 경고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국력이 북한의 40배가 된다는 것만 믿고 방심해서는 안되리라 봅니다.

 

그러니까 평화 공존을 유지하며 동시에 북한의 핵 포기를 강요하는 양면성을 가진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데 이게 어렵고 복잡합니다.

북한은 지금 배급제, 기획경제 다 무너졌고 장마당만 전국에 600여개 운용되고 있어서 거의 시장 경제로 들어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김정은과 그 추종세력 약3천 명만 따로 놀고, 나머지 약 2천 5백만은 그냥 그들의 지시에 무조건 따르고 있지요.

이런 면에서 상당히 신중하고 균형 있는 정책을 우리가 추진해야 하는데 걱정이 좀 됩니다.

 

최: 정대표님은 과거 대선에서 선거대책 본부장을 3번 하셨고, 그 중 김대중,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2번 구속이 되었습니다.

선거의 1등 공신인데도 오히려 옥고를 치른 것이지요.

검찰에서 정대표님에게 뇌물을 주었다고 진술한 어느 건설업자는 몇 년 후 “사실은 검찰의 협박과 회유로 거짓 진술했다”고 밝혔습니다.

오래 전 일이지만 당시 어떤 심정이셨나요?

 

정: 정치자금법 위반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불법을 저질렀어요.

그런데 아직도 정치자금법이란 것은 국회의원에 한정된 법입니다.

 

말하자면 선거에서 당대표로 나오면 어떻게 쓰고, 대선 후보로 나오면 어떻게 쓴다는 규정이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하나하나 정치 자금법으로 걸면 다 걸리게 되어 있지요.

 

이회창 선배가 저를 면회 와서 “김대중씨나 노무현씨나 내가 여기 와 있어야 하는데 자네가 있네. 참 애꿎다.”라고 위로의 말을 했습니다.

제가 정치한 지 40년이 넘었지만 20년 전만 하더라도 정치인들이 정치자금을 조달하여 대선을 위해 뛰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능력 중 하나로 치부되었었지요.

 

또 두 번째 구속된 경우는 정치적 보복이 좀 있었습니다.

제가 김대중 대통령과 경선한 것을 괘씸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나중에 저를 정치자금법으로는 잘 안되니까 엉뚱한 뇌물로 엮어서 집어 넣은 거지요.

거기 관계된 사람이 나중에 책을 내서 양심선언을 했고, 저를 찾아와서 죽을 죄를 졌다고 용서를 빌었지요.

 

최: 그래서 뭐라고 하셨나요?

 

정: ‘내가 당신 입장이라도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백 프로 장담할 수 없다.

나도 검찰에 몇 번 갔었지만, 여러 가지로 괴롭히면 견디기 어렵다.

다 이해한다. 당신이나 나나 다 운이 나빴을 뿐이다.’ 이렇게 얘기 했지요.

 

또 그 당시 담당 검사, 나중에 검사장까지 했지만, 이 사람이 나를 피해 다니더라고..

후일 만나서 소주 먹으며 ‘당신이나 나나 그런 정치 상황에서 다 어쩔 수 없었다’라고 했더니 눈물 찔끔 흘리고 죄송하다고 하더군요.  다른 아무 설명 없이.. 다 잊어먹고.. 지금은 친해요.

 

https://www.youtube.com/watch?v=UN5ROR4y39c&t=119s

 

최: 옥고를 치른 후 교정기관에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재소자들에게 강연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지금도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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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네, 나와서 즉시 교정 선교 예배에 참여했고 지금은 교정 위원까지 되었습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못 갑니다만, 전국에 교정기관이 54개가 있는데 계속 초대 받아서 제가 감당 못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 동안 정치하느라고 많은 분들에게 물질적으로나 정성이 담긴 마음의 성원을 많이 받았는데, 이를 조금이나마 돌려드리는 방법의 하나로 교정기관을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제주도, 장흥, 부산 등 안 가본 곳이 없이 54곳, 거의 다 한 번씩 다녀왔고 계속 갈 겁니다.

 

최: 여러 정치인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옥고를 많이 치렀는데, 정대표님처럼 교정기관에 다시 가서 봉사를 하는 정치인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교정기관에 가셔서 재소자들에게는 어떤 강연을 주로 하시나요?

 

정: 최근에는 주로 마음에 대한 말을 하는데, ‘마음을 풀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옥죄면, 건강도 나빠지고 살기 어렵다.

세상과 화해하고 용서해야 한다.  당신이 용서도 받아야 하지만 당신도 세상을 용서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제일 많이 합니다.

 

두 번 째는 제가 기독교 신앙이 깔려 있어서 감사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도 합니다.

감옥에서 무슨 감사하는 삶이냐고 하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이런 상황을 극복 할 수 있는 힘이 나오는 거지요. 그래서 그런 말을 많이 해 줍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그냥 단순히 좋은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면 파동이 일어나서 에너지로 되고 이것이 다른 감사하는 마음과 합쳐진다고 합니다.  

‘감사의 힘’이라는 책을 보면 과학적 근거도 있다고 하는데, 감사의 파동이 합쳐지면 바라는 일이 잘 성취되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교정기관에 가서 용서와 감사라는 두 테마를 가지고 주로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재소자들은 제가 같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니까 더 실감이 나고 귀를 기울이고 듣는 것 같습니다.

 

최: 제가 몇 년 전 수감 생활을 할 때도 면회를 와 주시고, 좋은 책도 많이 넣어 주셨지요.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밖에서 책을 넣을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정: 네. 그게 작년 10월부터입니다.

알아봤더니 책 안에 누가 마약을 넣은 것이 적발 되었다는데 이후부터 외부에서 책을 넣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만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일인데, 그렇다고 해서 모든 재소자들이 밖에서 책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 어이없는 일입니다.

 

최: 네. 그야말로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고 있군요.

 

정: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법사 의원님들과 이런 문제를 상의하고 있습니다.

지금 국회 말기라 다음 국회가 시작되면 바로 문제 제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 안에서는 건강과 독서가 가장 중요한데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부끄럽고 야만적인 일입니다.

교정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빨리 시정이 되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최: 이번에는 정대표님의 가족 분들에 대한 질문을 좀 하겠습니다.

선친이신 정일형 박사님은 독립 운동부터 민주화 운동까지 한국 정치사에 큰 업적을 남기시고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에게 존경을 받으셨습니다.

 

이태영 여사님도 억압받던 여성들을 위해 평생 헌신하셨습니다.

아들이 본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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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변화무쌍한 세월 속에서…그분의 인생은 시작이 이렇게 되었어요.

그분의 할아버지, 저의 증조부께서 대전에서 큰 재산을 모으셨대요.

 

이후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대전을 떠나 황해도로 가서 잿섬이라는 섬을 사서 1200명의 의병을 섬에서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종종 일본군을 습격하기도 하면서 별 희생 없이 전투를 치르다가 갑자기 장질부사가 섬에 돌아서 1200명 중 900명 정도가 희생되었어요.

 

이번에는 우리 조부께서 다시 의병을 300여명 길러서 일본군과 싸우던 중 또 장질부사가 돌아서 15명 남고 다 죽었습니다.

살아 남은 가족 중 어린 우리 아버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진남포로 들어가서 밥 얻어먹으려고 큰 건물에 들어갔는데 바로 교회였습니다.

거기서 끼니를 때우면서 교회의 종을 치는 일을 시작하셨지요.

 

교회에서 일 잘하고 공부 잘하니까 연세대 보내주고 나중에는 미국 유학까지 가게 되셨지요.

돌아와서 연세대 교수로 오라는 것을 사양하고 교회를 세우셨는데, 사람들을 모아서 일본과 싸우려는 게 목적이었어요.

 

그러다가 미국 대학에서 공부할 때의 지도교수가 한국에 와서 아버지에게 서대문에 있는 감리교 신학대학에서 같이 가르치자는 권유에 거기 교수가 되셨어요.

하지만 창씨개명 등을 반대해서 결국 그 신학대학이 문을 닫게 되었지요.

 

이런 과정 중 21번 체포되고 해방 될 때까지 거의 6년을 감옥에서 보내셨어요.

저는 이런 선조들께서 독립 운동 하신 덕으로, 저도 국회의원 할 수 있었고 제 아들까지도 3대가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최: 네. 그러셨군요. 해방 후에는 민주화 운동에 전념하셨지요?

정: 네. 민주화 운동도 오랜 시간 자기 희생 속에서 하셨고, 우리 어머니도 변호사로 돈 버는 일 거의 안하고, 가정법률 상담소를 만들어서 무료로 여자들, 주로 가정에서 핍박 받는 여자들 도와주는 일로 평생을 보내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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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81Dow9rV2_s&t=162s

 

최: 마지막으로 정대표님이 정치인으로서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정: 음… 이낙연 대통령 만들기입니다.

이 전총리가 제가 민주당 대표일 때 비서실장을 했습니다.

법과 대학 8년 후배인데 동아일보 기자로 첫 출근하는 날 저를 찾아 왔어요.

 

그것도 YH 여공 농성 사건 때, 그 농성 현장으로 왔는데, 1979년이니까 40년이 넘었습니다.

얼마 전 까지 총리 할 때도, 자주 공관으로 찾아가서 제 주위의 여러 사람들과 같이 소주 마시며 여러 대화를 나누었지요.

큰 일을 하려면 사업가, 법조인, 언론인, 연예인 등 사람을 많이 알아야 합니다.

 

이게 제가 정치인으로서 앞으로 하고 싶은 첫 번째 일이고…

두 번째는 이제 제가 정치 현역으로 들어가기는 좀 어렵기 때문에, 제 능력이 있는 한 그 동안 받은 사랑을 되돌려 주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사실 당대표까지 하려면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 동안 물질적으로나 자발적 봉사로 도와주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되돌려 드리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서 찬조 연설도 해 드리고 할 수 있는 성원을 다 하려 합니다.

 

최: 한국 정치 세계는 서로의 대화는 실종되었고,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만 있는 것 같습니다.

정대표님께서 탁월한 소통 능력과 40여년 쌓아온 경륜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사에서 큰 역할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허심탄회한 여러 말씀, 감사합니다.

 

정: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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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사무실에서  2020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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