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핵집 목사 : ‘디엠지 평화 순례길’이 ‘산티아고 길’보다 더 알려지기 바랍니다.
기록적인 더위가 이어지는 7월의 마지막 날, 경기도 가평에서 오시는 나핵집 목사님을 만나러 약속 장소로 나갔다.
얼마 전 파주의 임진각에서 열린 ‘제2회 코리아 평화의 날’에서 잠시 만난 목사님은, 대단히 성실하고 외유내강한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오랜 신앙생활로 다져진 자애로운 눈빛의 나핵집 목사님에게서, 남북한의 휴전을 종전으로 만들자는 시민운동을 평생 펼친 강력한 실천가의 모습은 언뜻 찾기 어렵다.
나 목사님은 기독교 장로회 소속으로 문익환 목사님의 맥을 잇는 평화운동가이고, 또 매년 7대 종단을 이끌고 디엠지 평화 순례를 하며, 종교 간의 화합을 위해 매진하는 열린 종교인이다.
그는 20여 년 전 북한의 조그련(조선 그리스도교 연맹) 대표와 새벽 5시에 남북 평화를 위한 기도를 남과 북에서 같이 하기로 한 약속 을 아직도 지키고 있다.
잠시 기다리니 환한 미소로 나 목사님이 들어오셨다.
최: 나 목사님, 멀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지난 6월 6일 제2회 코리아 평화의 날에 7대 종교인이 함께했던 ‘디엠지 평화 순례’는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모임이고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나: 강원도 고성에서 출발하여 임진각까지 384km를 18박 19일 동안 걸어서 횡단했습니다.
올해가 광복 80주년이라서 더 의미가 있었는데 걸으면서 7대 종단별로 가장 희생이 큰 장소에서 추모 행사를 했습니다.
양구에서는 원불교, 파로호에서는 유교 등 각 종단에서 호국영령을 위한 추모제를 지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이러한 디엠지 평화 순례를 4대 종교인들이 모여 시작했는데 올해 처음으로 7대 종교로 범위를 넓혔습니다.
최: 19일 동안 384km를 걸으려면 하루에 약 20km인데 쉽지 않은 여정입니다.
몇 명 정도가 순례길에 동참했나요?
나: 전부터 같이 주축이 되어 걷던 분들이 약 20명이고요, 전체 참여 인원은 매일 매일 다르고 들쑥날쑥합니다.
만약 가톨릭 주교가 어느 날 참여하면 거기에 따라서 같이 걷는 사람이 100여 명 갑자기 늘어나는 식이지요.
너무 사람이 많으면 좀 산만한 느낌도 있긴 합니다.
내년에는 주일에는 쉬고, 지역 주민들을 초대하여 경로당 등에서 대화하는 시간을 마련할까 합니다.
최: 어떤 주제로 지역 주민들과 대화하면 좋을까요?
나: 지금 디엠지 일대 주민의 가장 큰 문제는 휴전선의 공동화입니다.
즉 군인들이 줄어드니까 안보로 밥 먹고 살던 사람들이 먹거리가 없어진 겁니다.
자연히 주민들도 다른 큰 도시로 빠져나가고 있지요.
그동안 군사지역 주민들이 잘못된 정책으로 큰 피해를 봤으니, 이제 새 정부가 지원해서 디엠지 순례길을 산티아고 길처럼 만들어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 널리 알리기를 희망합니다.
그 근처 사는 사람들의 집을 개량해서 에어비앤비 같은 숙박 사업을 전개할 수도 있겠지요.
사실 디엠지 순례길이 산티아고보다 훨씬 경관이 아름답습니다. 여기는 산, 물, 계곡도 많지요.
디엠지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 지역 사람들이 밥 먹고 살 수 있고,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모이면 휴전선도 무력해집니다.
즉 디엠지 지역의 도시를 평화 도시로 바꾸어서 ‘평화가 밥이다.’ ‘평화롭게 사는 것이 우리가 잘 사는 길이다.’라는 모토로 지자체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최: 아주 멋진 구상입니다.
디엠지 순례길은 그 역사성이나 보존 정도, 또 285km 구간의 수려한 자연경관 등으로 확실히 매력적인 걷기 구간이 될 것입니다.
평화 순례를 할 때 비용은 자비 부담인가요?
나: 참가자들에게서 20일간의 숙박비로 50만 원씩 받지만, 많이 부족하여 대부분의 경비는 경기도에서 지원을 받습니다.
올해는 지원금의 많은 부분을 디엠지 평화 순례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제작비용으로 지급했는데 아마 몇 달 후 완성본이 나올 겁니다.
최: 평화 순례 다큐멘터리가 기대됩니다.
7대 종교는 어디 어디지요?
나: 개신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민족 종교, 유교입니다.
민족 종교라는 것은 일종의 민속 신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 개신교 중 예장(예수교 장로회) 측에서 참여하지 않은 것이 아쉽네요.
사실 예장이 한국 개신교 인구 중 반이 넘는데 앞으로 같이 평화 순례를 하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 생각해 볼 점은 참여 종교에 이슬람교가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약 20만 명의 무슬림이 있고, 그중 상당수가 외국인이긴 하지만, 숫자상으로나 상징적으로도 함께하면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될 수 있겠지요.
나: 네, 내년부터 그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제가 전주에서 온 무슬림의 이맘(교회의 목사격)을 만난 적이 있는데 기도 시간을 철저히 잘 지키고, 식사할 때 고기가 있었는데도 밥과 상추만 드셨어요.
갈 때 차비를 좀 드리니 자신은 이미 모든 것에 감사해서 안 받겠다고 끝까지 사양해요.
그걸 보니 너무 부끄럽더군요. ‘목사들은 과연 저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최: 나 목사님은 상계동에서 ‘열림교회’를 34년간 담임목사로 섬기셨고 작년에 은퇴한 후 경기도 가평으로 가셨지요.
오랜 목회 생활 후 지방으로 내려가셨는데 가평 생활은 어떠신가요?
나: 네, 34년간 외형적인 성장보다는 이름 그대로 열려 있는 교회를 지향했습니다.
그동안 성도들께서 잘 따라와 주시고 교회 내에서 작은 의견충돌도 없었습니다.
후임 목사님은 제가 전혀 알지 못하는 분인데, 장로님들께서 결정하셨습니다.
저는 작년 4월 은퇴한 이후, 전에 섬기던 교회는 한 번도 출석하지 않고 시골의 후배가 목회하는 교회를 출석하고 있습니다.
가평에서는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데 마당에 꽃을 많이 심으며(아내의 취미) 전원생활을 즐기고 산책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평에 와 보니 여기는 그야말로 사이비 이단들의 총본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더군요.
요즘 TV에 자주 나오는 엄청난 궁궐의 통일교는 물론이고 신천지, 에덴 성회 등 이들이 가평 지역 부동산을 많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자체 등에 뭔가 정치적인 지원을 하고 그 반대급부로 지역에서 큰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통일교는 80만 평 대지에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있고 큰 병원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통일교에서 근무하는 목사만 2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설악면에 있는 어느 학교는 일본 학생이 반인데 전 일본 총리 아베 암살 후 통일교도가 한국에 많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신천지의 경우는 젊은이들이 그들의 교회로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가 상당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안산에는 신천지에서 탈출한 후 그곳의 생활을 정신적으로 정리하기 위한 클리닉이 있을 정도입니다.
제일 걱정은 지금 젊은이들이 교회에서 계속 이탈하고 있는데 이들이 이런 사이비 종교에 많이 빠진다는 것이지요.
기존 교회는 다소 권위주의적이고 뭔가 젊은이들에게 봉사를 기대한다면, 사이비 종교는 성서를 왜곡해 그럴듯하게 설명함으로써, 뭔가 젊은이들에게 경제 문제, 결혼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 같습니다.
최: 나 목사님은 명함에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이사장으로 되어 있는데 어떤 단체인가요?
나: 에큐메니컬 정신에 입각해 1979년 설립된 연구원입니다.

에큐메니컬 정신이란 간단히 말하면 독선과 배타를 버리고,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추구하는 자세입니다.
즉 내 교회, 내 종교만 옳다 라는 틀을 넘어 하나의 인류, 하나의 지구라는 큰 틀 안에서 대화와 연대를 지향합니다.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정의롭고 민주적인 사회 건설에 기여할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여기서 매년 국민의 종교에 대한 의식 구조를 조사하는데 올해는 놀랍게도 개신교가 최저로 나왔습니다.
천주교, 불교, 원불교, 개신교 중 가장 신뢰를 못 받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목사의 한 사람으로서 참담하고 부끄럽습니다.
최: 목사님은 북한을 여러 번 다녀오셨는데 북한의 교회나 기독교 상황은 어떻습니까?
나: 현재 교인들은 약 만 5천 명 정도라고 하는데,평양에 있는 봉수 교회와 칠골 교회를 제외하면 모두 가정교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가정에서 끼리끼리 모여 예배를 보고 있지요.
가장 큰 봉수교회는 한국의 예장 통합 남 신도회에서 거금을 모금해 새로 지어주었지요.
당시에 가정교회(처소교회)가 약 500개 있다고 해서 예배 테이프를 보내주었는데, 예배 형태는 우리 70년대 예배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성경은 공동 번역을 거의 그대로 쓰고, 특별한 단어, ‘상호’를 ‘호상’ 정도로 바꾸었습니다.
최: 나 목사님은 북한 조그련(조선 그리스도교 연맹)의 강영섭 위원장을 여러 번 만나셨지요?

강영섭 위원장과 나핵집 목사
나: 2003년 7월 강 위원장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해서 처음 만났습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평화통일위원장 자격으로 초청을 받아 만남의 기회를 가졌는데, 거기서 남과 북의 교회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후 2004년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개신교 아카데미에서 열린 “한반도/조선반도에서의 평화통일을 향한 과정에 있어서 교회의 역할”에 관한 국제협의회에서 강영섭 목사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바로 그 해 “6.15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금강산 기도회”가 금강산에 있는 당시 김정숙 휴양소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PROK)와 조선그리스도교연맹(KCF) 사이에 진행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강영섭 위원장이 참여했고 금강산 기도회는 이제 개신교 교단이 아닌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함께해야 한다고 저희가 요청했습니다.
강 위원장이 그것을 받아들여 그다음 해 계속 기도회를 이어 갈 수 있었지요.
이후 2004년부터 6년 동안 매년 200명 정도가 전세기로 평양을 오가며 진행되었습니다.
강영섭 위원장 별세 이후 아들 강명철 목사가 조그련을 잘 이끌고 있습니다.
주변 인물을 통해 알아보니 지금도 새벽 4시에 남북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그련과 함께 한반도 에큐메니컬 포럼 - 방콕, 2020
최: 목사님은 그동안 휴전 선언을 종전 선언으로 바꾸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하셨는데, 혹자는 종전 선언 이야기만 나오면 이것이 주한미군 철수로 연결되어 안보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반대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종전 평화 캠페인 신년 기자회견 2022
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동북아 질서를 위해서 미국이 한반도에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을 끌어들이더라도 동북아의 모든 나라가 함께 협의해서 안보를 지켜나간다면, 즉 군사훈련을 해도 다 같이 함께 하고, 이렇게 하
면서 동북아 지역 평화를 지켜나가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을 만났을 때 그도 ‘미군 철수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해서 김대중 대통령이 놀란 일이 있지요.
그러니까 종전 선언과 미군 철수는 별개의 문제이며, 아마 미군이 철수한다면 중국과 러시아가 가장 좋아할 겁니다.
언제 어디서나 국가 간에는 여러 민감한 문제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지역 간 그리고 도시 간 네트워킹을 통해 서로가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북아 평화, 즉 다자 안보 구축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시민단체들과 함께 UN본부에 종전서명용지 전달(20만 명) 2023
최: 이재명 정권이 들어섰지만, 북한의 반응은 아직 냉랭합니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 대국을 계속 무시할 수는 없을 겁니다.
나: 원산 해변을 개발할 것을 보면 김정은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이러한 대규모 관광단지는 대한민국과 미국의 도움 없이는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가 없다는 것을요.
그리고 이번에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을 폭격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러시아 용병 등으로 계속 푸틴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려 하겠지요.
그럼에도 멀지 않아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이 성사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최: 네, 그래서 평화 노래 ‘디엠지 동산에서’에 나오는 가사처럼 ‘금강산 가는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 지나 베를린까지’ 가는 평화 열차가 출발하기를 기원합니다.
나: 네 저도 그 노래, 철원 국경선 평화학교에서 같이 불렀는데 참 좋습니다.
제가 2013년, WCC (World Council of Churches) 10차 총회가 부산에서 열렸을 때 국내외 인사 100여 명을 모집해 바로 그 평화 열차를 타는 프로젝트를 추진했었습니다.
부산에서 출발이 아니라 거꾸로 베를린에서 출발해 23박 24일로 부산까지 도착하는 평화열차였어요.
베를린에서 오면서 큰 도시에서 세미나도 열었는데, 북경에서 평양까지는 당시 기차 운행 허가를 북한 당국에서 받았었지요.
아쉽게도 당시 박근혜 정부에서 반대해 단둥에서 배를 타고 인천으로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최: 아, 그럼 나 목사님이 생각하셨던 평화 열차가 바로 ‘디엠지 동산에서’ 노래의 가사가 되었군요. 하하.
오늘 여러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나: 네, 감사합니다.
노래 '디엠지 동산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qwBd-QQcB9M
좌로부터 필자, 안바나바 목사, 나핵집 목사 2025/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