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적과 오해 사이: 강만수 전 장관의 회한
![[크기변환]1강만수 올림 KakaoTalk_20251112_181949827_05.jpg](http://www.choiwonyoung.net/data/editor/2511/20251125110203_06c49c339dce883a92d477c9299a6db7_fm7h.jpg)
강만수 전 장관의 사무실은 예전 동아건설 빌딩에 있었다.
30여 년 만에 필자가 근무하던 옛 건물을 방문하는 발길에 감회가 없진 않았으나, 회사 주변이 너무 많이 변해 그런 생각도 잠시 뿐이었다.
약속 시간 5분 전, 강만수 전 장관의 사무실이 있는 14층으로 올라가니 여직원이 복도에 나와 안내를 해주었다.
그의 사무실은 넓지 않은 검박한 공간이었다.
강만수 전 장관은 부가가치세 신설과 금융실명제 도입 실무를 담당하며 일찌감치 대한민국의 핵심 경제정책을 주도한 엘리트 경제관료였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재정경제원 차관으로 IMF 구제금융 협상의 중심에 있었고, 이후 이명박 정부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등을 조속히 성사시켰다.
퇴임 후 2011년 3월, 산업은행장을 지냈으나 정권이 바뀌자마자 그는 피의자 신세로 전락했다.
배임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2021년 출소 후 소설가로 등단해 자전적 경험을 담은 소설집 ‘최후진술’을 지난 여름에 발간했다.
강 전 장관과의 대화는 두 시간가량 진행되었고, 그는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살짝 격앙되어 대한민국의 경제 문제와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인터뷰 시작 전 그는 사무실 밖으로 나가 손수 얇은 종이컵에 생수를 담아서 필자에게 건넸다.
최: 강만수 장관님은 서울대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다시 뉴욕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하셨지요.
1970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30여 년간 경제 관료로 공직에 몸담으셨는데 우선 경제 문제에 대해서 질문하겠습니다.
물가가 많이 오르면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지금 한은에서 금리를 못 올리고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항상 큰 이슈인데 몇 년간 너무 급격히 올랐습니다.
우선 부동산 문제는 어떻게 해결 방향을 잡는 게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강: 우리나라 경제가 안 돌아가니까 한국은행이 금리를 못 올리고 있죠.
미국과의 격차가 커져서 부작용이 있는데 지금 한국은행이 아주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부동산은 원론적으로는 공급 이외에는 장기적 해결 방안이 없습니다. 지금은 부동산 가격이 우리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선진국 대도시들이 거의 다 올라가고 있습니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돈이 엄청나게 풀렸습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당시 연준 의장 벤 버냉키가 헬리콥터로 돈을 뿌렸다고 할 정도로 돈을 많이 풀었지요.
그런데 과거는 돈을 뿌리면 돈을 회수했어요. 그런데 2008년부터는 미국이 계속 돈을 뿌리는데, 회수는 거의 안 했죠.
돈이 갈 데가 없잖아요. 그런 돈이 파생상품을 만들어서 그걸 막 폭탄 돌리기 식으로 돌리다가 터진 것이 리만 사태잖아요.
당시 우리가 상상을 못 했던 시티 뱅크라는 세계 최대 은행이 파산 상태에 들어가서 구제금융 받았지요.
그리고 GM이 파산하리라고 생각한 사람 아무도 없었죠. 그런데 GM도 파산했잖아요.
그 뒤에 코로나 때 또 돈을 뿌렸거든요.
그 여파로 부동산은 지금 서울뿐 아니고요, 뉴욕, 런던, 파리 전부 다 올랐습니다.
그래서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 잡지에서는 “앞으로는 집을 상속 못 받는 사람은 집 사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가 된다. 앞으로는 집이 있는 계급과 집이 없는 계급으로 나뉘고 이것이 결혼할 때 아주 중요한 조건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지요.
최: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돈이 너무 많이 풀린 부작용이군요.
강: 네, 30여 년 전, 제가 재무부 이재국장으로 통화를 다룰 때는 소위 총통화, 전문적으로 M2라고 합니다만, 그때 기준으로 GDP(국내총생산)의 약 40%였었거든요.
그런데 최근 통계를 보니까 GDP의 180%예요. 기억나시겠지만 옛날, 1990년대에는 기업 하는 사람이 어음 사용 안 하는 기업이 없었잖아요.
돈이 적으니까, 그러니까 GDP의 40%로 돈을 공급했다는 이야기는 60%는 외상거래라는 이야기거든요.
외상거래를 대신해서 어음을 주고받았잖아요. 어음 안 쓰는 기업이 없었죠
단순하게 계산하면 그때보다 거의 4배의 돈이 풀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도 은행 경영을 해봤지만, 지금은 금리 입찰 시대라고 합니다.
돈 빌려줄 데가 없어가지고 신용이 괜찮은 회사에서 돈을 빌리겠다고 하면 5~6개 은행이 막 서로 입찰 식으로 들어갑니다.
최: 네, 여하튼 부동산 폭등을 막는 방법이 있을까요?
강: 네, 가장 강력한 방법은 공급을 늘리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그린벨트 제도가 아직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대도시 근교를 다 묶어놨잖아요. 그린벨트를 폐지하고 그걸 택지로 활용하면 집 값을 잡을 수 있습니다.
현재 그린벨트의 70%가 그린 지역이 아닙니다. 즉 그린벨트로서의 효용이 오래전 상실된 지역이지요.
최: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 때는주택 가격이 별로 오르지 않았었군요.
강: 네, 그렇습니다. 그린벨트를 풀어서 아파트 지을 계획이 있었거든요.
당시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그런 정보를 알고 앞으로 주택 공급이 많이 될 거라는 생각에 주택 가격이 오르지 않았습니다.
경제는 소비자의 심리가 크게 작용합니다.
물론 부작용도 있습니다. 투기도 일어나고 환경단체들도 반대하겠지요. 또 도시 집중화 현상도 부작용의 하나고, 특히 개발 방법을 지혜롭게 해야 하는데 지주와 개발업자와 지방자치 3자가 컨소시엄 형태로 해서 이익을 투기판으로 만들지 않는 그런 방법을 마련했었지요.

그러던 차에 정권이 바뀌면서 다 폐지되어 버렸죠. 그 후에 이 문제가 어느 정권에서도 크게 공론화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최: 그럼 지금이라도 정부 정책으로 그린벨트를 풀 수도 있을 텐데, 그런 논의만 간혹 있고 실질적으로 잘 실행이 안 되는 이유는 뭘까요?
강: 왜 안 하느냐, 그게 참 퀘스천이죠.
어쩌면 주택 가격이 올라가서 좋을 사람들이, 항상 정권을 잡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 그건 아니겠지요.
오래전 박정희 대통령은 부동산 종합 정책을 건설부에서 못 하게 했고 재무부가 했습니다.
왜냐하면 건설부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건설업자를 진흥시키는 업무잖아요.
특히 문재인 대통령 때는 시도한 정책마다 다 실패했잖아요. 그러면 국토부 사람들이 그렇게 무능한 사람이냐, 그것도 좀 이상하고요….
최: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듯합니다. 이를 타개하려면 어떤 경제정책을 써야 할까요?
강: “저성장은 한마디로 투자가 안 돼서 발생합니다. 투자를 확대하려면 세율을 인하하고 R&D(연구개발)에 지출을 확대해야 합니다.
내가 장관 시절 가장 과감하게 했던 정책이 R&D 지원이었습니다.
기업은 이익이 나야 미래 산업에 투자할 수 있는데 세금 부담이 크면 발전이 어렵지요.
최: 이제 소설집 ‘최후진술’에 대해서 말씀을 좀 나누고 싶습니다.
제목처럼 최후진술을 하신 후 약 5년간 옥고를 치르셨는데,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언제였나요?

강: 아무래도 처음 당할 때, 신문에 난 허위 보도로 충격이 컸었습니다.
1차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담당 검사가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강만수 장관은 평생 공직에 있으면서 사리사욕을 추구한 소위 비리백화점이다.”라고 기자회견을 했고 언론들이 그걸 그대로 받아 실었지요.
최: 어떻게 검사가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요?
강: 그러니까요.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검사로서 할 말이 아니죠. 혐의의 공표는 죄가 되는 거고, 그리고 사람 인격을 그런 식으로 평생을 사리사욕만 추구한 비리백화점이라고 했으니 … 그래서 출소하자 제일 먼저 그 담당 검사를 모욕죄로 고발하려고 했는데… 주위에서 하도 말려서 못 했습니다.
최: 네, 그동안의 명예가 실추되는 아픔이 감당하기 힘드셨겠어요.
소설에 보면 이 충격으로 공무원 최고 훈장인 청조근정훈장도 한강에 던져버리는 것으로 나왔지요.
강: 네, 모욕을 당했을 때는 정말로, 물론 다른 사람은 달리 볼 수 있지만, 내가 솔직하게 나, 나를 평가할 때 정말 아파트 한 채에 눌러앉아서 평생을 살았는데, 정말 바보같이 살았는데, 평생 사리사욕을 추구했다 그러니까….
검찰이 비리백화점이라고 회견을 하고서는, 나에게는, 그렇게 오래 중요한 직책을 수행했는데 어떻게 재산이 이렇게 없느냐, 주식도 없고, 뭐 골프 회원권도 없느냐면서….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 요직 중에서 한두 개만 해도 빌딩 하나 정도는 생길 수 있는 자리인데 재산이 없다는 것을 어느 국민이 믿겠느냐?
우리는 합리적인 의심으로 앞으로 끝까지 수사를 할 텐데, 협조해 주시는 것이 피차가 편한 방법이라는 것이지요.
최: 그러니까 “사실과 진실보다는, 이런 요직에 오래 있던 사람이 왜 재산이 이렇게 없느냐, 상식이 아니다.”라는 말이군요. 참 힘드셨겠네요.
강: 네, 살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참 어려운 것이, 나는 재산이 없다는 말 외에는 할 이야기가 없잖아요. 내가 어떻게 재산이 없는 것을 증명합니까? 있는 것을 증명할 수는 있어도….
언론에 워낙 그렇게 거짓말이 나오니까 나는 내 방어 수단으로, 나는 그런 인생을 산 사람이 아니라는 걸 한마디라도 하고 싶어서 언론에 해명서를 돌렸는데 그것이 더 검사를 자극하게 됐지요.
첫날 구속됐을 때 새벽 3시인데, 들어간 방이 비어 있던 방인 데다가, 그 방이 무슨 지금도 그런 방에 넣는 것도 의도적인 거 아닌가 싶은데, 12월 1일 날인데 창문도 잘 안 닫히고 난방도 제대로 안 돼서 문자 그대로 바닥이 얼음장 같았어요.
아, 이것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구나 생각했지요.
최: 그런 고통이 이 소설을 쓰시게 한거군요?
강: 네, 소설을 쓴 이유는,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그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 텐데 어떻게 한 명도 이런 억울한 문제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을까’ 라는 생각에서였지요.
그래서 내가 ‘소설가로서 등단한 다음에 소설을 쓰면, 소설이라는 자체가 본질이 픽션이니까 소설을 가지고 시비 걸 사람은 없을 거다.’라고 생각해서 쓴 겁니다.

최: 네, 그리고 수감 기간 중 코로나로, 방문 밖에 오랜 기간 못 나올 때도 있었죠?
강: 2020년 12월 24일부터 사동 전체가 폐쇄됐거든요.
아예 방문 밖에 하루 종일 못 나가니까, 독거가 화장실 포함 2평 정도인데, 정말 힘들었어요.
곧 풀리나 했는데 61일 만에 풀렸거든요.
61일을 그 작은 방에 갇혀서 문 바깥도 못 나갔는데 유일하게 나갈 때는 약 열흘에 한 번씩 코로나 검사받으러 나갈 때였지요. 그래서 한 번 나가면 복도에서 일부러 천천히 걷고 천천히 들어왔어요.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건의서를 하나 냈었어요.
건의서 내용은 “감옥을 폐쇄한다는 것은 수용자에게 엄청난 고통이다. 이렇게 한 달을 지내면 보통 때 두 달을 지내는 것보다 힘들다.
그걸 감안해서 모든 수용자에게 가석방을 좀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다.”라고 했지요.
그래서 나는, 그걸 참 나대로 정성을 들이고 나도 장관 출신이기 때문에 앞에 봉투에는 ‘장관이 꼭 읽어 보시기를 바랍니다.’까지 썼어요.
편지 보낸 지 몇 주일 지나니까 ‘귀하의 건의에 대해서는 민원 처리 규정 몇 조 몇 항에 의해서 업무에 참고하겠습니다.’라고 딱 한 문장으로 돌아왔더라고요.
당시 제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에 관한 책을 많이 봤습니다.
그는 신약의 모든 진리와 원리가 담겨있는 말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것이다라고 했어요.
나도 그때 선고받고 다시 구치소로 들어오는데, 서울구치소 복도가 길잖아요.
대충 150미터 아니면 200미터 될 텐데 그 복도를 걸으며, 이거는 완전히 지구가 파멸되는 것 같은 그런 거고, 그런데 나는 평생 예수님을 믿고 살았는데 말이 안 되잖아요.
내가 스스로 나를 제일 잘 알잖아요. 0.001%도 내가 잘못이 없는데…그래서 마틴 루터가 ‘원래 인간의 속성이, 죄 없는 사람을 때려잡고 자기들이 이익을 취하고 그게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고 오히려 본질적인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최: 당시 구속 사유가 은행장 배임 혐의였지요?
강: 네, 검찰은 “정상 심사라면 대출이 어려운 기업에 심사 기준을 완화·조작해 대출을 성사시켰고, 그 결과 은행에 손해가 발생했다”는 틀로 배임을 구성했습니다.
문제는 담보 부동산의 ‘청산가치(회사가 망해 자산을 처분할 때의 평가액)’가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앞으로 손해가 가능할 수 있기 때문에 배임이라는 것입니다.
망하지도 않은 회사의 자산을 망했다고 가정해서 평가하면 어느 누가 정당한 대출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통상적인 담보대출은 시장가치·감정가 + 담보비율·사업성을 종합해 판단하는 게 상식입니다.
이후 이 회사에서 담보로 잡혔던 그 부동산은 은행 차입 액수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팔렸습니다.
최: 네, 다시 경제 관련 질문을 하겠습니다.
IMF 사태를 YS 정권 말기에 행정부의 잘못 때문에 터진 걸로 생각하고, DJ가 그걸 잘 수습한 사람으로 인식하는데, 제가 소설집에 있는 단편 소설 ‘환란 전야’를 읽어 보니 ‘아, 이게 이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좀 했습니다.
강: 네, IMF 때 상황은 현재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은 사실과 좀 다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IMF는 일본에 당한 것입니다. 물론 YS 정부가 잘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참으로 피하기 어려운 문제였고요, 조금 배경 설명을 하면 일본이 당시 오랜 기간 미국에게 플라자 합의 등으로 얻어맞으면서도, 그동안 엄청나게 모아놨던 달러를 한국과 동남아에 풀었습니다.
당시 동남아 시장을 장악했던 영국과 프랑스가 일본과 경쟁하면서 미국과 협력하여 BIS 8% 룰(은행은 위험자산 대비 최소 8% 이상의 자기자본 보유)을 만들어, 자격이 안 되는 일본은행이 영업을 못 하게 하자 일본은행은 거의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그러자 일본이 한국에 있는 자금을 급격히 회수하게 된 것이지요.
당시 제가 일본 재무성 차관에게 돈을 회수해 가더라도 조금만 천천히 해달라고 애걸복걸도 해봤는데 여의치 않았습니다.
DJ 정부에서 외환위기를 예정보다 좀 빨리 졸업한 것은 잘한 거지만, YS가 한국 경제를 완전히 망쳐놓은 것을 DJ가 살렸다는 것은 좀 지나친 이야기입니다.
최: 마지막으로 지금 한국의 경제를 이끌고 가는 많은 엘리트 경제 관료들에게 한말씀 해주시지요.
강: 제가 공직에 있을 때도생각한 것인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의미심장한 말이 나옵니다.
“민중을 따라가면 나라가 흔들리고 민중에 맞서면 정권이 흔들린다.”라는 말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공직자는 대중에 영합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치인은 표를 위해 대중에 영합할 수밖에 없으므로, 행정 관료가 버팀목이 되어 줘야 합니다.
공직에 있으면서 전 국민이 반대하는 부가가치세 도입 같은 일을 할 때 괴로웠으나,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스스로 확신하며 진행했습니다.
정치인도, 장차관도 아닌 1급 이하의 책임 관료가 경제의 방향을 잡아야 나라가 발전합니다.
최: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강: 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