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 강제 수용소에서 용케 탈출했네.”
살몬이 요남을 위로하듯 말했다.
“네, 어머니가 돌아가시니까 무서운 게 없어졌어요.
그전에는 탈출하다 잡혀 처형당하면 어머니가 얼마나 가슴이 아프실까 생각하니 탈출은 생각도 못 하겠더라고요.”
“아, 그랬구나. 애인은 탈출하는 걸 알았나?”
“네, 탈출해서 자기를 구해 달라고 했어요.
지금도 하루하루 저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카멜 수용소는 로마군단이 거주하는 카이사레아 근처라 보안이 철저할 텐데…”
“네, 그렇긴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수용소 자체 경비 인원은 많지 않아요.
수용 인원이 500 명정도인데 간수는 100명 정도니까요.”
“5대 1이네. 잘하면 자체 폭동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저도 그 생각을 해 봤는데 가능성이 없어요.
대부분 수용자가 너무 배가 고파서 배를 누르면 등뼈가 만져진다고 해요.
처음에는 식량이 모자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일부러 굶기는 거였어요.
그래야 다른 생각을 못 하고 먹는 거로 사람을 통제할 수 있으니까요.”
“음, 그렇구나.”
“네, 탈주나 폭동은커녕 그런 사람을 신고해서 식사를 더 배급받으려는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어떤 때는 가짜로 신고를 하기도 해요.
두세 사람이 짜고 누가 도망가자고 했다고 하면, 바로 그날 저녁에 먹는 죽을 2배로 받을 수 있으니까요.
누명을 쓴 사람은 다음 날 죽게 되지요.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많겠구나.”
“네, 그래서 인간의 정신이 죽어 있으면 그 집단은 이미 죽은 거나 다름이 없어요.
사실 수용자 중 몇십 명만 한마음으로 뭉치면 당장 뒤집어엎을 수 있는데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에요.
처음에는 인간 자체에 환멸을 느꼈지만, 나중에는 그런 생각도 안 하게 돼요.”
“음, 그래서 열성당 대원들을 데리고 수용소를 습격하려고?”
“네, 그래요.”
요남이 바라바를 쳐다보며 물었다.
“제가 나가서 곧 바라바 당수님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면 되나요?”
바라바가 무슨 대답을 하려 하는데 식구통에서 간수의 소리가 났다.
“바라바는 면담이 있으니 나오시오.”
로벤이 깃발을 가지고 칼로스를 만난 것이다.
천부장을 만나서 로벤을 비롯한 동료들도 같이 풀어 달라고 강력히 말해야 한다.
감방문이 삐걱 무거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다녀와서 또 얘기하지.”
바라바가 요남에게 말했다.
“네, 잘 다녀오세요. 여태까지도 기다렸는데요, 뭐.”
요남이 벌써 열성당원이 된 듯 나가는 바라바를 향해 가슴에 손을 대고 경례를 하였다.
방을 나오니 바라바를 안내하는 간수가 그동안 안면이 있어서인지 친절했다.
“천부장 님이 찾으십니다.
며칠 만에 또 만나시는 것을 보니 일이 잘 풀리나 보네요.”
“저보다도 억울하게 들어온 동료들이 곧 나가야지요.”
안토니아 요새 2층에 있는 칼로스의 방까지 올라가는 길이 꽤 멀게 느껴졌다.
원형 계단 창문 사이로 예루살렘 성전의 황금빛 둥근 지붕이 눈이 부시게 빛났다.
그 뒤로 시온 호텔의 지붕도 낮게 보였다.
거기서 사라와 루브리아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천부장 방 앞에 알렉스 백부장이 서 있다가 바라바를 보고 싱긋 웃었다.
내일이라도 특사로 나갈 수 있는 것을 아는 듯했다.
알렉스가 말없이 칼로스의 방문을 열어주고 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로벤이 독수리 깃발을 손에 들고 칼로스 앞에 서 있었다.
바라바는 가슴에 화려한 금빛 갑옷을 두른 칼로스에게 여유 있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고 로벤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깃발을 가지고는 왔는데 불상사가 발생했소.”
천부장의 차가운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렸다.
무슨 소리인지 언뜻 이해가 안 돼 로벤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의 고개가 숙어졌다.
“눈이 없어졌소.”
“눈이요?”
바라바가 반문하는데 알렉스가 로벤이 들고 있는 깃발을 낚아채듯 건네받아 바닥에 펼쳐 보였다.
독수리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깃발을 가지고 오다가 흙이 묻어서 깨끗이 세탁을 했다고 하는데 그때 비누가 독수리의 눈을 지운 것이오.”
로벤이 그 말을 시인하듯 고개를 끄덕였고 천부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독수리의 날개나 몸통은 모두 수를 놓아서 만들었지만, 눈동자만은 검은 물감을 칠했기 때문이지.”
눈동자가 하얗게 비어 있는 독수리가 바라바를 조롱하듯 바닥에 누워 있었다.
“저도 조금 전에 여기서 펼쳐보고 알았어요.
오다가 흙이 좀 묻는 일이 생겨서 사라 님이 깨끗이 빤 후 주었는데 그만….”
로벤의 말끝이 떨렸다.
“눈동자를 그려 넣을 수 없나요?”
바라바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옆에 서 있는 알렉스가 말했다.
“이 물감은 로마 남쪽 에트나 화산에서 나는 까만 돌을 빻아서 만든 것이라 여기서는 구할 수가 없소.
일반 물감으로는 이 천에 칠해지지도 않아요.”
잠시 무거운 침묵이 방안을 감쌌다.
천부장의 큰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모래시계가 소리 없이 모래를 흘려내리고 있었다.
“이 깃발을 총독 각하께 보여 드릴 수는 없소.
따라서 특사도 기대하지 마시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나도 더 이상 어찌할 수 없구려.
내 원망은 마시오.”
칼로스의 얼음장 같은 얼굴이 알렉스를 향했고, 바라바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알렉스에게 팔짱을 끼인 채 천부장의 방을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던 간수가 뭐라고 했는데 언뜻 잘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요?”
“나가시면 살몬 님 면회 좀 자주 오시라고요.”
“아, 네…”
바라바의 굳은 얼굴이 이상하다고 느낀 간수가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감방 안으로 돌아온 바라바가 예상 밖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요남의 얼굴이 울음을 참고 있었다.
살몬이 간수를 다시 불렀다.
“사형 집행팀장 롱기누스 백부장에게 급히 할 말이 있으니 좀 오시라고 하게.”
간수가 곧 연락하겠다며 바삐 사라졌다.
“롱기누스가 지난번 이 방에 올 때 보니까 누군가 밖에서 바라바 님을 신경 쓰는 사람이 있었어.
그냥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빨리 알려줘야지.
무슨 로마군 대장의 부관이었는데….”
이삭도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