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타나가 어젯밤 12시 넘어까지 로비에서 기다렸지만, 요한과 그의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그들이 날짜를 오늘로 잘못 안 것 같아요.
오늘 저녁에도 안 오면 내일 아침 일찍 베다니에 가서, 나병 환자 시몬의 집을 미리 찾아 놓고 올게요.
베다니가 여기서 30분밖에 안 걸린대요.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유타나가 루브리아를 안심시켰다.
“응, 그래. 그럼 되겠지. 탈레스 선생님은 준비 다 되셨나?”
“네. 아래층 로비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사라 님 재판이 세 번째니까 이제 가셔도 되겠어요.”
산헤드린 재판소는 시온호텔에서 아주 가까웠다.
루브리아 일행이 재판정에 들어가니 아직 두 번째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피고는 다 떨어진 죄수복을 입고 밧줄에 묶인 채 구부정히 앉아 있는데 머리가 허연 노인이었다.
흰옷을 입은 바리새인 검사가 그의 죄를 확인하자 변호사는 이에 대해 별 성의 없는 답변을 몇 마디 했다.
방청석에는 그의 친지나 가족인 듯한 사람들이 여러 명 앉아 있고 여자들은 눈물을 닦고 있었다.
재판장 가야바가 눈을 감고 듣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피고가 몇 살입니까?”
“44살입니다.” 변호사가 대답했다.
“근데 왜 이렇게 늙어 보이나요? 어디 아픕니까?”
피고가 대답을 안 하자 변호사가 피고석에 다가와 그의 귀에다 대고 큰소리로 물었다.
“어디 아파요?”
피고가 역시 변호사의 귀에다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피고가 마음이 아프다고 합니다.”
“왜 마음이 아픈가요?”
가야바는 계속 눈을 감고 있고 부심이 대신 물었다.
변호사가 피고에게 큰소리로 묻고 그가 또 변호사의 귀에 대고 뭐라고 말했다.
“귀가 잘 안 들려서 마음이 아프답니다.”
변호사가 대답하자 부심이 잠깐 생각하더니 또 질문했다.
“왜 자기 귀가 안 들리는데, 잘 들리는 남의 귀에 대고 얘기합니까?”
부심 판사의 날카로운 질문에 변호사가 대답을 못 했다.
가야바가 눈을 감은 채 부심 판사에게 손을 내밀자 미리 써놓은 판결문을 건네주었다.
가야바가 엄숙한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피고 나합은 남편이 건강한데도 불구하고 그가 나병에 걸렸다는 거짓 증언을 하며 옆 집 앙드레와 공모하여 ….>
다른 사람의 판결문이었다.
가야바가 눈을 부라리자 부심 판사가 당황하며 다른 판결문을 건네주었다.
이번에는 두루마리를 펴서 눈으로 먼저 이름을 확인한 후 읽기 시작했다.
<피고 시몬은 두 달 전 안식일에 웅덩이에 빠진 양을 직접 구해준 죄를 범했다.
당시 주위에서 그의 딸을 비롯한 세 사람이 오늘은 안식일이라 그러면 안 된다고 큰 소리로 말했지만, 귀가 안 들려서 못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경우에는 양이 스스로 올라올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만 허락한다는 규정을 시행한 지 오래이나, 이것도 몰랐다고 주장한다.
피고가 계속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반성하기는커녕, 귀가 안 들려서 몰랐다는 핑계로 본 재판부를 기만하고 있으므로 중벌을 면할 수 없다.
이에 피고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다.
다만, 피고가 초범인 점, 5년 전 천둥이 칠 때 피고의 귀고막이 나갔다는 증인이 두 명 있는 점을 참작해, 앞으로 한 달 내에 흠이 없는 양 세 마리를 가져오면 석방해 줄 것이다.
이상 피고 시몬의 재판을 마치고 잠시 휴정합니다.>
가야바가 말을 마치고 일어났다.
피고는 입회 경비원들에게 바로 끌려나갔고 방청석의 사람들도 꽤 많이 빠져나갔다.
루브리아 일행은 방청석의 앞쪽으로 나가 앉았다.
이제 곧 사라의 재판이 열릴 것이다.
루브리아는 혹시 바라바가 와 있나 하고 슬쩍 뒤를 돌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검사석으로 나가 앉은 탈레스 선생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잠시 후 가낫세 변호사가 피고 측 변호사석에 와 앉았다.
그는 앉자마자 손을 모으고 경건한 자세로 눈을 감고 있었다.
루브리아가 유타나에게 저 사람이 가낫세 변호사냐고 물었다.
“네, 맞아요. 오늘은 앉자마자 기도부터 하네요.”
그가 옆에 앉아 있는 사라를 보니 그녀도 눈을 감고 있는 것이 기도를 하는 듯했다.
유대인의 하나님은 유대인끼리의 재판에서 누구의 편이 되실지…
정의의 하나님이니까 옳은 사람이 결국 승리하게 되겠지만, 그렇다면 왜 루고 같은 사람이 있어서 이런 재판까지 하게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또 어떤 곳에는 유대인의 하나님도 로마의 신들처럼 무서운 복수를 하고 질투를 한다고 선지자들의 책에 쓰여 있다.
루브리아는 적어도 이번 재판 같은 경우는 하나님이 사라의 편이라 생각했다.
가야바를 비롯한 재판관들이 들어오며 청중들이 모두 일어섰다.
50대의 가야바는 얼굴이 퉁퉁해서 눈이 작아 보였고 어딘가 심술궂은 느낌을 주었다.
가낫세가 탈레스 선생과 눈인사를 교환하는 모습이 보였다.
가야바가 먼저 재판장석에 앉자 옆의 판사가 앉고 청중들도 모두 앉았다.
“루고 백부장 재판을 시작합니다.
오늘은 선고 공판입니다. 피고 입장시키세요.”
잠시 후 재판정으로 들어온 루고는 수염을 기른 모습이었다.
피고답지 않게 여유가 있어 보였고 사라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사라는 그를 외면했다.
“검사는 지난번 공판에서 제시한 증거나 증인 이외에 다른 물증이 있으면 제시할 준비하시고, 원고 사라는 지금 여기 나와 있으면 손을 드세요.”
사라가 손을 들자 가야바가 가낫세에게 물었다.
“저 여자가 원고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사라를 확인하는 것은 그녀의 신병을 확보하려는 절차 같았다.
“피고가 지난번 원고를 상대로 제출한 무고죄에 대한 판단도 오늘 같이 하게 됩니다.
검사 측, 새로운 소명 자료 없지요?”
가야바가 탈레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탈레스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지금 새로운 물증을 제시하기 전에, 피고 측 증인 무단이 이 자리에 참석했는지 확인하고자 합니다.”
가야바가 사라를 확인하듯 무단에게 손을 들게 했다.
“재판의 공정성을 해치는 거짓 증언하는 사람은 그 죄가 밝혀지면, 피고와 같은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을 증인이 알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무단이 가낫세의 눈치를 본 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루브리아가 무단의 목소리가 나자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거무잡잡한 얼굴에 눈썹이 진했다.
그런데 루브리아의 눈에 어디서 본 듯한 다른 얼굴이 언뜻 스쳐 지나간 것 같았다.
그녀는 속으로 ‘아’하는 탄성과 함께 얼른 다시 돌아보았다.
무단의 뒤에 허연 수염을 잔뜩 붙이고 이집트 두건을 쓴 바라바의 얼굴이 그녀를 보고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