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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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15 화 ★ 식구통

wy 0 2019.01.14

 

 

천장의 동그란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 소리가 김대표의 말을 중단시켰다.

 

"폐방 점검 시간이오.

 

일렬로 창문 앞에 죽 앉아 있다가 교도관이 지나갈 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면 끝이오."

 

쇠 창살이 한 뼘 정도로 나란히 박혀 있는 창문을 향해 방주도 서둘러 똑바로 앉았다.

 

들리는 노래 가사는 '법은 어렵지 않아요. 법은 불편하지도 않아요. 법은 우리를 지켜주어요~' 처럼 법에 대한 이야기였고 후렴에는 어린 아이들 합창도 나왔다.

 

노래가 2~3번 반복되자 복도 끝에서 '가악빵~ 차려어엇"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곧 이어 '1방, 2방, 3방' 하는 소리가 가까와지고  방주가 있는 7방을 두 사람이 슬쩍 보며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14방까지 점호를 마친 후 아까보다는 작은 소리로 '각방~ 쉬어엇' 하는 구령이 들렸다.

이와 동시에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가 벽에 기대 앉았다.

 

손철은 환타지 무협소설을 손에 들었고 김을수는 눈을 감고 명상을 하는 듯 했다.

 

잠시 후 방주가 무혁과 눈이 마주쳤다.

 

“천장 스피커 소리를 좀 줄일 수 없나요? “

 

무혁이 천장을 한 번 올려다 보고 씩 웃었다.

 

“우리 맘대로 줄일 수 있으면 여기가 내 안 방이요”

 

방주가 겸연쩍은 미소를 짓는데 복도 끝에서 ‘배애애시이익’이라는 소리가 약간의 음률에 맞추어 크게 들렸다.  

  

 모두 벌떡 일어나서 수용복 상의를 옷걸이에 걸고 무혁이 사물함 뒤에서 밥상을 꺼내 다리를 펴고 방 중간에 놓았다.

 

밥상은 4사람이 간신히 둘러 앉을 수 있는 크기였는데 모두 앉으니 방이 꽉 찼다.

 

"교수님, 숟가락 젓가락은 이걸로 쓰시오."

 

무혁이 건네 주는 초록색 플라스틱 젓가락 중간에 톱으로 쓸어 낸 표시가 2개 있었다.

 

숟가락이 깨끗한 지 자세히 들여다 볼 새도 없이 철문 아래 쪽에 있는 네모난 구멍이 털컹 열리고 자동차 기름 통 같은 하얀 플라스틱 통이 쑥 들어왔다.

 

무혁이 잽싸게 받아서 작은 뚜껑을 열고 빈 페트병에 물을 따르는데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

"오늘 저녁은 뭐가 나오나요?"

 

방주의 질문에 무혁의 손가락이 벽 한 쪽을 비스듬히 가리켰다.

 

거기에는 ‘수용자 생활 안내문’이라는 가로 세로 1미터 정도의 초록색 알림판이 있었고, 그 아래 9월 식단표가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수요일 저녁 메뉴는 오징어 무국, 감자 조림, 배추 김치 3가지였다.

 

"오징어 무국이 나오네요!

 

요즘 오징어 값이 많이 올랐다던데."

 

"오징어가 목욕하고 무 만 남긴 국이요.

 

운 좋을 때는 오징어 파편을 조금 발견 할 수도 있지."

 

김대표가 설명을 하는데 밥 그릇이 문구멍을 통해 들어 왔고 무혁이 주걱으로 공기에 담아서 적당히 나누어 주었다.

 

곧 이어 국과 반찬이 들어 왔는데 언뜻 보기에도 국에는 오징어가 없는 성 싶었다.

 

"저 문구멍으로 모든 것이 들어 오는군요."

 

"문구멍이 아니라 배식구라고 하지.

 

예전에는 식구통이라 했는데 어감이 나빠서 그런지 이름이 바뀌었소."

식구통.jpg

식구통

 

무혁이 밥과 국을 순서대로 상 앞에 놓으며 방주에게 말했다.

 

"내일부터는 교수님이 지금 지가 하는 걸 해야 하니께 잘 보시오.

 

식사 당번과 설거지 당번은 교대로 하는 것인디 지가 주로 설거지를 할거니께."

 

"아. 내가 설거지를 해도 되는데, 미안해요."

 

무혁이 보일락 말락한 미소를 띠며 자기 자리에 앉자 김대표가 먼저 숟가락을 들었다.

밥은 그런대로 따끈하고 뜸이 잘 들었는데 콩이나 현미는 전혀 없고 보리가 좀 섞인 백미였다.

 

'콩밥 먹는다'가 ‘감옥살이를 한다’와 동의어로 쓰였는데 오래 전 이야기인 성 싶었다.

 

오징어 무국에는 역시 오징어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의 국도 마찬가지였는데 한끼 식사비가 1443원이고 이것은 주식, 부식, 연료비, 소모품비를 모두 포함한 것이라니 그럴 만도 했다.

 

"김 하나 꺼냅시다."

 

손철이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무혁이 벌떡 일어나 TV 뒤 작은 공간에서 포장 된 맛 김을 한 개 가지고 왔다.

 

화투 패 나누듯 세 사람에게 4장씩  주고 무혁이 3장을 자기 앞에 놓는다.

 

아마 이런 김은 따로 구입을 하는 듯 싶었다.

 

"우리가 주로 빵, 김, 커피 같은 건 따로 사 먹는데 신교수는 개인 구매 하겠소? "

 

무슨 말인지 잘 몰라서 물어 보려는데 대표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그러니까 원칙은 자기가 먹고 싶은 것만 따로 시키는건데, 그렇게 해도 되고 아니면 이 방에서 공동으로 먹는 것을 같이 시키는 거지."

 

"저는 상관 없으니 편하신대로 하시지요."

 

"음, 그럼 공동 구매 하도록 합시다.

 

무혁이는 형편상 빼주고 우리 셋이서 하는거요.

 

그러니까 3만원어치 시키면 만 원씩 영치금에서 나가는 겁니다."

 

무혁이 스스로 막내를 자처하며 궂은 일을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대표가 말을 마치고 국에 밥을 마는 것을 보고 방주도 서둘러 수저를 움직였다.

 

오징어국 국물이 좀 싱거웠고 입맛도 없었지만 설거지 하는 사람을 생각해서  공기밥을 비우기 시작했다.

 

10분도 채 안 돼서 식사가 모두 끝나자 각자 일어나서 자기 밥 그릇을 개수대 위 설거지 통에 넣었고 조금 남은 김치와 감자는 짬 통에 부었다.

 

이것을 대표가 식구통에 올려 놓자 복도 오른 쪽 끝에서 '짜암'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수용복을 입은 젊은 사람이 파랗고 둥그런 통이 실린 쇠 달구지 같은 것을 덜컹거리며 복도로 끌고 와서 각 방마다 식구통에 나와 있는 짬을 통 안에 부었다.

 

대표가 하는 일은 짬 처리뿐이고 손철은 밥상 위를 행주로 깨끗이 닦은 후 식탁을 접었다.

 

각자 하는 일이 정확히 정해져 있는데  방주에게  우선 보여주는 것 같았다.

 

무혁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 대표가 식사 전 들어 온 물로 커피를 타서 방주에게 권했다.

 

"나는 블랙으로 마시는데 신교수는 설탕을 넣어 줄까요?"

 

"저도 블랙이 좋습니다."

 

개수대에서는 물 틀어 놓은 소리와 퐁퐁을 풀어서 그릇을 닦는 수세미 소리가 섞여 나왔고, 능숙한 솜씨로 설거지하는 무혁의 뒷 모습이 보였다.

 

" 실례지만 '대표님'이라는 호칭은 이 방의 대표라는 의미인가요?"

 

방주의 질문에 김갑수가 가볍게 대답했다.

 

"그렇지. 옛날에는 방장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신입식이 연상돼서..."

 

손철이 얼른 끼어들었다.

 

"대표님은 직업이 많으셔.

 

변호사 사무장 말고 두개나 더 있걸랑.”

 

방주가 궁금한 표정으로 손철을 바라보았다.

 

"김밥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 또 하나는 작은 개척 교회 목사님이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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