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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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34 화 ★ 도로아미타불

wy 0 2019.03.25

 

인간은 사랑할 때와 기도할 때 그리고 죽을 때 솔직해진다는 말이 있다. 

 

베토벤이 운명하면서 ‘연극은 끝났다’ 라고 했다는데 방주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목사님은 그런 말을 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괴테가 했다는 ‘좀 더 많은 빛을~’ 정도가 어울리지 싶었다. 

 

방주는 아버지가 기도하시던 대로 신실한 믿음으로 교회를 섬기는 목사가 되었고, 몇 년이 지나자 맡은 바 연기가 점점 능숙해지며 어떤 때는 연기도 능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어차피 큰 연극 무대이고 목사뿐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상황에 맞는 연기가 필요하고, 또 그렇게 살아야 남들보다 앞서 나가는 법이다. 

 

상담을 원하는 교회 식구들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고민될 때, 어려운 일을 당한 신도들을 위로해 줘야 할 때, 세련되고 차분한 연기는 목사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큰 자산이었다.

 

방주의 연기가 흔들린 것은 선희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고부터였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으나 그녀가 하나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다’ 는 목사님의 판에 박힌 설교는 너무나 무기력했다.

 

방주는 성경이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신학 대학에 들어간 이후 믿지 않게 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을 가르치는 손가락은 될 수 있을지언정 하나님은 아니다. 

 

어떠한 상징이 상징의 기능을 잃고 그 자체가 되면 바로 우상 숭배가 되는 것이다. 

 

마틴 루터가 교황과 사제들의 부패한 실태를 고발하며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선언은 성경을 하나님으로 만들자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 마틴 루터도 사람들이 독일어 성경을 읽게 되면서 그의 말을 지나치게 해석하여 이번에는 성경을 너무 신성시 하자 이에 대한 우려를 표시 했었다.

 

‘철컥’ 하는 쇳소리가 방주를 현실로 돌려놓았다.  

 

감방 문이 열리고 김대표가 안으로 들어왔다. 


며칠 전 구속적부심에서 출소한 손철이 면회를 왔는데 그를 만나고 온 것이다.

 

“손사장님 의리 있소. 나가자마자 냉큼 오셨네. 

 

양복 입은 모습을 나도 봤어야 했는디.”

 

고무혁이 호기심 넘치는 얼굴로 김대표에게 계속 말했다.

 

“접견물은 과일 좀 많이 넣으라고 하셨지라?”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는 김대표의 얼굴이 별로 밝지 않았다. 

 

둥그런 눈을 몇 번 끔뻑이며 면회 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면도를 깨끗이 하고 양복을 입은 손철의 모습은 말쑥하면서 생소했다. 

 

신교수와 무혁에게도 안부를 전해 달라는 그에게 김대표가 당부의 말을 했다.

 

“손사장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잘 나가셨으니 앞으로는 욱하는 성질로 또 실수하지 말고, 고향에 내려가서도 주일날에는 꼭 하나님의 성전에 나가도록 하세요.”

 

그가 얼른 그러겠다고 안하고 입술을 몇 번 달싹거리더니 어렵사리 말했다.

 

“김대표, 아니 김목사님께 면목이 없지만 교회는 못 나갈 것 같소이다. 

 

우리 집사람이 내가 여기 있던 한 달 반 동안 매일 새벽 공양을 드렸다네요. 

 

나도 여기서 매 주일 예배를 드렸다고 했는데 통 먹히지를 않아요. 

 

이번에 잘 된 것은 순전히 부처님 가호라고 하니까, 우선 절에 좀 다니고 나중에 바꿔 보겠소이다.”

 

김대표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도로아미타불이네" 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는데 손철은 못 들은 것 같았다.

 

이상이 면회에 대한 김대표의 보고였다. 

 

방주가 아무 말도 안했고 잠시 후 고무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 이제 또 어떤 인간이 들어오려나… 

 

한 1주일만 있다 오면 좋겠는디…”

 

한 방에 세 명이 사는 것과 네 명이 사는 것은 큰 차이다. 

 

4평 정도의 방에 사물함이 3개 있으니 정원이 셋이라는 말인데 대부분 4명을 채우고 어떤 때는 5명도 집어 넣는다. 

 

개인 소지품을 사물함 하나에 나눠 써야 하고, 밤에는 화장실 입구에서 누어 자는 사람이 있으니 화장실 갈때마다 깨워야 하고, 어떤 때는 이불 속 안보이는 다리를 세게 밟아 싸움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독거에만 있어 본 사람들은 '사르트르'가 한 말 "지옥이 타인이다"라는 의미를 잘 모른다.  

 

감옥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부딪치는 것이 가장 괴로운 일이다. 

 

옆에 바싹 누워 같이 잘 사람을 선택할 수 없고, 누가 느닷없이 들어와 오늘 밤 다리를 밟히며 싸우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또한 타인의 시선은 나를 인간이 아닌 물건으로 고정시킨다. 

 

실존적 주체에서 한낱 사물 같은 대상으로 떨어지는 고통이다. 

 

불교에서도 여러 괴로운 지옥을 지나 가장 마지막으로 가는 것이 무간 지옥, 서로 간격이 없이 붙어사는 지옥이라 했다. 

 

‘덜커덕’ 하더니 쇠문이 다시 열렸고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신방주씨, 치과 진료 연출!”

 

감옥에서는 밖에서 들을 수 없는 단어들이 몇 가지 있는데 ‘연출’ 이 그 중 하나다. 

 

방주는 처음에 무슨 TV드라마를 찍는 것도 아닌데 왜 연출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리나 했다. 

 

수용자가 면접을 가거나 의무과를 갈 때 절대 혼자서는 갈 수 없고, 간수와 같이 연결시켜서 나간다는 뜻인데 일제 시대 감옥에서 쓰던 말을 아직도 쓰는 것 같았다. 

 

또 ‘사약’ 이라는 말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구매하는 비타민이나 소화제등을 말한다. 

 

개인 私가 아니라 죽을 死로 들리기가 쉽다. 임금님이 내리는 사약처럼. 

 

‘보고전’이라는 단어도 있는데 수용자가 담당 교도관에게 부탁이나 질문을 하고 싶을 때, 매일 아침 메모처럼 써서 제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대화 수단이다. 

 

방주가 이빨이 아프다는 ‘보고전’ 을 쓴 것은 구속된 다음 날이었다. 

 

무혁이 친절하게 혹시 이빨 아픈데 없냐고 물어서 어금니가 좀 아프다고 했더니 얼른 치과 진료 보고전을 대신 써주었다. 

 

치과 진료는 빠르면 1달 어떤 때는 2달 이상 걸리니까 하루라도 빨리 보고전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한 달이 채 안되었는데 비교적 일찍 연출을 한 것이다. 

 

오른 쪽 아래 어금니에 크라운을 씌운 것이 몇 달 전부터 살살 아파왔는데, 갑자기 이곳에 들어왔고 그동안 간혹 쑤시긴 했었다. 

 

복도에 나가니 치과 진료 가는 사람들 십 여명이 2열로 기다리고 있는데, 방주를 바라보는 얼굴들이 ‘왜 이리 늦게 나오냐’고 문책하고 있었다.  

 

방주가 슬그머니 맨 뒤에 섰고 행렬은 곧 바로 담당 교도관을 따라 나란히 의무실로 이동했다. 

 

처음 들어 가보는 의무 대기실은 교회 예배당처럼 긴 나무 의자가 나란히 7-8개 있고 앞에는 작은 책상을 놓고 안경 낀 교도관이 앉아 있었다. 

 

이미 3~40명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맨 뒤에 앉은 방주의 눈에 교도관 어깨 넘어 맞은 편 벽에 걸려있는 액자가 보였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방주가 새벽기도에서 자주 인용하던 요한 사도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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