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판결.jpg

                                                                                  

바라바 263화 ★ 달빛 아래 쓴잔

wy 0 2024.02.18

 선생을 따라온 사람들은 제자들을 합쳐도 열댓 명밖에 안 되었다.

베드로는 빠져나간 제자들에게 화가 났고 선생을 보기가 민망했다.

그들은 주위에 돌멩이를 치우고 땅을 골라서 누울 준비를 했다.

이곳은 가끔 선생과 함께 온 곳이라 익숙했고, 오랜만에 실컷 먹은 양고기와 포도주가 모두를 늘어지게 했다.

예수 선생은 자기의 기도를 제자들이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중에 모두 깨닫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신이 십자가를 지고 진리를 위해 죽는 것처럼 그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십자가를 지게 될 것이다.

선생은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게세마네 동산의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갔다.

그들은 지난번 변화산에서처럼 엄청난 일을 기대했다.

나는 좀 더 올라가 기도할 테니 여기 앉아서 나를 기다려요.”

예수 선생의 다음 말이 그들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내 마음이 지금 매우 괴로워 죽게 되었으니, 여러분은 잠들지 말고 깨어 있어요.”

선생은 돌멩이를 던지면 닿을 만큼 올라가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렸다.

죽음을 앞둔 인간적 고뇌와 절망 앞에서 그는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포도주를 안 마신 네리가 혼자 선생 일행을 뒤에서 멀찌감치 따라왔었다.

제자 세 명은 선생이 기도를 시작하자 곧 바닥에 누워서 쉬는 듯 보였다.

나사렛 출신인 네리는 요한과는 어려서 만난 적이 있지만 예수 선생이 궁금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열성당 일행의 천막이 반대편 계곡을 넘어 희미하게 보였다.

어둠에 언뜻 보이는 선생의 자세는 흙바닥에 얼굴을 대고 있었다.

그때 하늘에서 별빛이 더 밝게 빛나며 선생이 있는 감람나무 사이로 은빛 가루가 천사처럼 포근히 내려왔다.

 

네리가 놀라서 선생에게 몇 걸음 더 가까이 갔다.

아버지여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저에게 내린 잔보다 저는 이 땅이 더 좋습니다.

이 흙과 함께 이 땅에 있게 하소서. 이 잔은 너무 씁니다.”

이 말을 하며 상체를 든 선생은 마치 하늘에서 희뿌연 은빛 잔이 내려오는 것을 손으로 받는 듯했다.


네리 게세마네 1collage.png

잠시 그대로 시간이 정지한 듯한 순간이 지나고 선생이 천천히 고개를 숙여 다시 기도하는 자세가 되었는데 그의 넓은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이 붉게 보였다.

숨소리를 죽이고 감람나무 뒤에 서 있는 네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은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에게 갔다.

그들은 모두 나무 밑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베드로는 겉옷을 둘둘 말아 베개로 삼고 야고보는 요한의 다리를 편안히 베고 누운 자세였다.

선생이 그들을 깨워 책망했다.

나와 같이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하고 그사이에 모두 잠들었네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해요.

마음은 간절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군요.”

제자들이 부스스 일어나며 죄송해했고 선생은 다시 기도하던 자리로 돌아와서 몸을 숙였다.

나사렛 예수는 또 한 번 이 쓴 잔을 거두어 달라고 간구했으나 그것은 아무래도 아버지의 뜻이 아니었다.

이제 곧 맞이할 죽음, 그 안에는 엄청난 고통뿐 아니라 멸시와 조롱이 난무할 것이다.

그동안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던 사람이 모욕당하고, 아무 힘없이 십자가에 달리는 것을 보게 된다.

선생의 얼굴이 고뇌로 흔들렸다.

이제라도 제자들을 데리고 동산을 내려가 베다니로 가서 내일 아침 일찍 갈릴리 호수로 돌아가면 어떨까.

거기서 그를 따르는 가난하고 선량한 사람들과 같이 지내며 마음껏 웃고 편안한 하루하루를 살고 싶었다.

총명하고 여성스러운 마르다 마리아 자매와 막달라 마리아의 얼굴도 차례로 떠올랐다.

사방이 조용하니 풀벌레 소리가 크게 들렸다.

밤이 깊어 갔고 선생은 일어나 제자들에게 다시 가 보았다.

그들은 또 잠에 빠져 있었다.

선생은 제자들을 깨울 듯하다가 그냥 돌아왔다.

그의 얼굴은 문자 그대로 피땀을 흘려 몹시 고통스러워 보였다.

네리가 생각하기에도 제자들이 한심스러웠다.

선생이 엎드려 다시 작은 목소리로 아까와 같이 이 잔을 거두어 달라는 기도를 시작했다.

이때였다.

저 아래 어렴풋이 성전으로 난 길 쪽에서 흩어진 불빛이 움직이는 것이 네리의 눈에 보였다.

이 시간에 저런 무리가 불을 밝히며 움직인다면 성전경비대원일 것이다.

네리는 숨을 죽이고 동산 아래로 내려갔다.

작은 움직임에도 풀벌레 소리가 멈추었고 돌아보니 예수 선생도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네리는 아직도 자고 있는 제자 세 명을 지나 동산의 입구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뛰어갔다.

그들도 움직이는 횃불을 보고 있었다.

벌써 상당히 가까이 올라왔고 이제 다른 길로 피하기도 어려웠다.

칼과 몽둥이를 들고 갑옷으로 무장한 경비대의 선두에 마나헴과 말고가 있었다.

몇 시간 전 가야바는 나사렛 예수 일행이 저녁을 먹은 후 대부분 흩어지고, 얼마 안 되는 무리가 감람산으로 들어갔다는 보고를 받았다.

즉시 대기하고 있던 마나헴을 불렀다.

드디어 나사렛 예수를 체포할 좋은 기회가 왔소.

지금 게세마네에 있다고 하네.

오늘 밤 잡지 않으면 유월절 이후에는 재판을 못 하니 빨리 가서 잡아 오시오.

예수의 얼굴을 잘 아는 사람이 있지요?”

, 미리 확보해 두었습니다.

예수와 같이 있는 제자들도 모두 체포하겠습니다.”

짧은 침묵 후 가야바가 말했다.

제자들은 놔두시오.”

지금 예수와 같이 있는 놈들은 골수분자들일 텐데 이번 기회에 모두 잡아 일망타진해야 합니다.”

아니요. 두목만 잡으면 아무 힘도 못 쓸 놈들이오.

그 사람들도 회개하고 선량한 시민으로 살아갈 기회를 주도록 합시다.”

마나헴이 자기 귀를 의심하면서 눈을 껌벅거렸다.

 

 

잠시 후 성전 경비대가 게세마네 동산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즉시 칼을 겨누며 예수 일행을 에워쌌다.

앞에서 횃불을 들고 흔드는 말고의 얼굴이 보였다.

하지만 어둑어둑해서 누가 예수인지 쉽게 알 수 없었다.

유다가 뒤에서 나타났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가 인사하며 선생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친구여, 당신이 하려는 일을 어서 하시오.”

선생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말고와 경비대원 한 사람이 예수의 손을 밧줄로 묶으려 했다.

칼을 가지고 다니던 베드로가 품에서 작은 칼을 꺼내 휘둘렀고, 말고의 오른쪽 귀에 상처를 입혔다.

그 칼을 치워요.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하게 됩니다.”

나사렛 예수는 순순히 포박당했고, 그 모습을 본 제자들은 공포에 질려 감람산 어둠 속으로 재빨리 흩어졌다.

아무도 그들을 쫓지 않았고 별빛 사이로 천군도 내려오지 않았다.

게세마네 동산에 다시 풀벌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State
  • 현재 접속자 7 명
  • 오늘 방문자 236 명
  • 어제 방문자 169 명
  • 최대 방문자 846 명
  • 전체 방문자 246,470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