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 도착한 바라바는 안토니아 감옥으로 향했다.
오늘은 요남이 돌아왔을 터이고 이삭 님과 살몬 님도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싶었다.
지금 바라바의 마음은 쓰라리고 흔들렸다.
세겜에서 떠나려고 하는데 사라가 불쑥 루브리아의 서신을 내밀었다.
오는 길에 마차 안에서 뜯어보니 처음에는 애잔한 안부를 전한 후 자신의 흉상을 만들고 있으니 가능하다면 복사본을 한 개 보내주겠다는 소식도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에 그녀의 현재 심경을 담담히 표현했는데 이제 과거는 모두 잊고 서로를 위해 새출발을 하자는 것이다.
루브리아의 흉상이 오면 가게에 진열해 놓고 생각날 때마다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바라바의 아픈 마음을 그런 방법으로 달래려고 한 루브리아는 역시 로마 여인 다웠다.
아프던 눈도 이제 괜찮고 자신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원로원 의원과 만나고 있다고 했다.
마음 한구석에 고이 간직했던 빛나는 별이 그 광채를 잃고 있었다.
어둡고 거친 바다 위에서 그 별의 빛을 따라서 인생의 항로를 새로 개척하려 했던 바라바의 희망도 방향성을 잃은 듯싶었다.
지금 깊이 생각하기도 싫었고 하소연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같이 밤새 술에 취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안토니아 감옥으로 바로 향한 것도 일단 생각을 돌리고 싶어서였다.
특별면회실에서 잠시 기다리니 두 사람이 들어왔다.
반갑게 포옹을 하고 그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이삭 님은 흰머리가 늘어났고 살몬 님은 살이 좀 빠진 듯싶었다.
이상하게 요남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 전에는 틀림없이 돌아온다고 했는데… 지금 벌써 저녁 6시가 넘었는데 내일 아침에 오려나 보네요.”
바라바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있었다.
“그 녀석이 신나게 돌아다니다가 날짜를 착각한 건 아닐까요.
얼간 망둥이 같은 녀석이라….”
말하는 살몬의 얼굴도 심각해졌다.
“요남이 날짜를 착각할 사람은 아니지요….
내일 오전에 못 오면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어요.”
“혹시 감옥에 다시 들어오기 싫어서 그런가… 나오미라는 애인을 여기서 찾았다면 마음이 바뀔 수도 있는데….”
바라바도 갑자기 그런 말을 들으니 그럴 수도 있을 법했다가 그의 애인은 사마리아에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며칠 사이에 여러 일이 그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내일 안 오면 열성단원들의 석방은 일단 어려워질 것이고 페르시아 국경의 전방부대 자원서까지 낸 동료들에게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들을 감옥에 그대로 두고 로마에 가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일이다.
어차피 루브리아의 서신을 읽고부터는 맥이 풀려서 로마에 가고 싶지도 않았다.
요남이 내일 아침에는 들어오겠지, 생각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 요남이 애인을 만나서 새출발을 하고 싶다면 막을 수는 없어요.”
이삭이 바라바를 보며 계속 말하는데 그런 게 아니라고 설명하기도 귀찮았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며 불길같이 일어나서 그 시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솔로몬이 한 말입니다.'”
이 말을 들으니 루브리아에 대한 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라고 생각하는데 살몬의 걸쭉한 목소리가 들렸다.
“돈보다 사랑이라고 솔로몬이 말했군요.
그분은 돈이 워낙 많은 분이었으니까… 벌써 천 년 전의 이야기인데 지금은 가문이나 돈을 더 좋아할 거예요.
질투에 눈이 멀면 잔인해지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겠지요.”
바라바가 자기도 모르게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너무 걱정 마시오. 요남이가 사고만 안 났으면 내일 오전에는 들어올 거요.
그리고 이번에 시간 나면 니고데모 님을 한번 만나 보세요.”
이삭이 한숨을 한 번 길게 내쉬고 이어 나갔다.
“어제 나사렛 예수를 따르던 젊은이 한 사람이 신성 모독죄로 돌에 맞아 죽었는데 니고데모 님도 조사를 받고 있는지 걱정이 되오.
내가 듣기로는 야고보 님의 모임에 넓은 장소를 제공해 주었다는데 만약 고소하는 사람이 내란 음모죄로 걸면 주동자급으로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럼 니고데모 님이 우리 방으로 올 가능성이 크네요.
유명하신 분인데 잘 맞을 준비를 하라고 해야겠네. 흐흐.
아직도 간수장인양 살몬이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내일 오전에는 헤로디아 왕비를 만나고 오후에 시간을 내서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난번에도 댁으로 찾아갔었지요.”
“고맙소. 그를 만나서 당분간 예수 제자 모임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이번 처형을 계기로 상당히 강력한 탄압이 계속될 것입니다.
상대방이 극악한 방법으로 나올 때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는 것은 비굴한 것이 아니에요.
자중자애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것이 지혜로운 처신입니다.”
“네. 그렇게 전해드리겠습니다.
이삭 님과 살몬 님도 곧 석방이 되셔야 할 텐데 저만 나와서 이렇게 돌아다니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우리는 가야바가 있는 한 석방은 쉽게 안 될 거요.”
“가야바가 이미 너무 오래 해서 안나스가 아들 요나단을 곧 후임으로 앉힌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내년쯤은 무슨 변화가 있겠지요.”
“그러면 좋은데… 아니면 빌라도가 로마로 돌아가고 새 총독이 오면 가야바도 자연히 바뀝니다.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이번에는 살몬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니고데모 님 같은 분이 잘 되셔야 우리도 좀 희망이 있는데 자꾸 이런 일이 생기니 참 걱정입니다.
그러나저러나 요남이 녀석 지금 어디서 좋아하는 포도주 마시고 잔뜩 취해서 못 오는 거 아닐까요?”
“그 말씀을 하시니까 저도 술을 한잔하고 싶네요.
지금 여기서는 마시기 어렵지요?”
바라바의 말에 살몬이 반색했다.
“내가 누굽니까. 여기서 결혼식 빼고는 다 할 수 있습니다.
마침 오늘 당번이 제 직속 보좌관이었어요.”
살몬이 면회실 문을 열고 조용히 몇 마디 했다.
잠시 후 평상시 배달되던 물통이 내용물이 바뀌어 들어왔다.
바라바와 살몬은 술잔 대신 수프 접시에 술을 가득히 따른 후 한 번에 마셔버렸다.
짜릿한 포도주가 목구멍에서 식도로 불길처럼 넘어갔다.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눈을 감고 술을 넘기는 바라바의 가슴을 태우는 말이었다.
*아가서 8장 6~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