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바는 고개를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정문을 들어선 후 롱기누스 백부장을 만나서 로벤의 특별면회를 부탁했다.
백부장은 얼굴이 뽀얘지고 불룩 나왔던 배도 쑥 들어갔다.
10년은 젊어진 듯했고 너무 친절하니까 오히려 어색했다.
면회실에서 잠시 기다리니 로벤이 나왔다.
“고생이 많았지. 오늘 저녁이나 늦어도 내일은 나오게 될 테니까 걱정하지마.
건강은 괜찮은가? 동료들 중 아픈 사람은?”
바라바가 얼싸안은 로벤의 몸통이 반으로 줄어든 느낌이었다.
“네, 저는 아무 문제 없고요, 동료들도 나간다는 희망에 잘 버티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좀 어수선했는데 내일 나간다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다행이네. 자네가 동료들을 잘 이끌고 있어서 그동안 무사했던 거야.”
“아닙니다. 모두 단장님을 신뢰하는 믿음 때문이지요.
사실 다른 방에서는 요즘 무기수 자살자가 많이 늘어나고 있어요.
며칠 전에도 무기수 한 명이 횃불 걸이에 목을 매고 죽었습니다.”
“그렇구먼…. 무기수 자살자가 늘어나고 있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로벤은 양 볼이 쏙 들어갔지만 눈빛은 아직도 초롱초롱했다.
“네, 얼마 전 산헤드린에서 양형기준이 강화되어 형량이 자꾸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어요.
1~2년 전만 해도 유죄 최고 형량이 20년 정도였는데 이제 35년은 보통이에요.”
옥졸이 특별대우로 음료수를 두 잔 가지고 들어왔다.
“그러니까 얼마 전에는 최고 형량인 20년을 받은 사람이 다 살고 나가면 25년 정도에는 무기수들도 감형이 돼서 나갈 수 있었어요.
그러던 것이 35년이 되었으니 10년 이상 더 살아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자살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구나. 무기수가 형량이 정해진 유기수보다 먼저 나갈 수는 없으니까….
왜 형량이 그렇게 자꾸 올라가게 되는 건가?”
“일벌백계주의지요. 엄하게 처벌할수록 범죄가 줄어든다고 생각하는데 여기 실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만드는 법입니다.”
로벤이 화제를 바꾸었다.
“단장님 눈이 좀 피곤해 보이시네요. 우리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셔서….”
“천만에… 진작 못 빼줘서 미안하지.
어제 술을 좀 했는데 잠을 별로 못 잤어.
아, 그리고 나가면 일단 로마군으로 편입되어 페르시아 전방부대로 가는 것은 알고 있지?”
로벤을 외면한 채 바라바가 미안한 듯 말했다.
“그럼요. 우리 모두 그런 각서를 벌써 썼어요.
걱정 마세요. 일단 나가기만 하면 페르시아까지 아무도 안 갈 거예요.
그런데 어제부터 갑자기 전쟁이 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바라바의 충혈된 눈동자가 로벤을 향했다.
“사마리아를 토벌하러 로마군 2천 명이 동원된다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페르시아 대신 사마리아에 가도 석방 자격이 될 거예요.”
“아마 헛소문일 거야.”
바라바가 가볍게 말했다.
“네, 저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음, 그리고 내가 곧 로마를 다녀와야 하는데 석방되면 갈릴리로 가서 사라를 좀 도와줘.
가급적 빨리 오도록 할게.”
“그러지 않아도 그러려고 생각했어요. 얼마나 있다 오실 건가요?”
“아무래도 2달은 걸리겠지.
오고 가는 시간만 해도 한 달은 더 걸릴 테니까.”
로벤이 무슨 말을 하려다 마는 듯했다.
아마 바라바가 로마로 간다는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선생을 만나서 지난번 원로원에 보낸 청원서 문제를 같이 상의할 거야.
중요한 문제라 안 갈 수가 없네.”
바라바가 변명하듯 로벤의 눈치를 보았다.
“아, 그러시군요. 걱정 마시고 다녀오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있을게요.”
로벤의 목소리가 밝아지며 자신 있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럼 나는 또 만날 사람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
안토니아 감옥을 나와서 바라바는 예루살렘 서부 고급 주택가로 향했다.
이삭 님이 당부한 니고데모 의원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기억을 더듬어 그의 집으로 가는 큰길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제 이 길로 계속 완만하게 올라가면 대저택들이 나오고 야자수가 많이 서 있는 파란 대문이 그의 집이었다.
길을 걸으며 바라바는 또 하루 사이에 그의 운명이 다시 로마로 향하는 것을 느꼈다.
정신이 좀 없었지만, 이왕 간 김에 루브리아를 만날 생각을 하니 마음 한구석이 밝아졌다.
그녀의 집이 로마 아벤티누스 언덕 위의 큰 은행나무가 있는 집이라고 했으니까 찾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의 발걸음이 파란 대문 앞에 멈추었다.
몇 달 전에 잠깐 본 문 앞을 지키는 하인이 바라바의 얼굴을 기억했다.
“지금 손님이 계시는데 들어와서 조금 기다리세요.”
지난번처럼 친절하기는 했지만, 그의 얼굴이 어딘지 무거워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서 넓고 편안한 대기실에 잠시 앉아 있으니 니고데모가 들어왔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이삭 님의 안부와 걱정을 전했다.
니고데모는 그사이 몇 년은 지난 것처럼 흰머리가 늘었고 어깨가 처져 보였다.
“이삭 님 걱정은 내가 해드려야 하는데 거꾸로 심려를 끼치고 있네요.
사실 예수 선생의 처형 이후 안 보이는 감시와 압박이 느껴지고 있어요.”
그가 잘 다듬어진 콧수염을 손가락으로 쓸면서 계속 말했다.
“얼마 전에 내가 사울과 예수 선생의 제자들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어쩌면 그것이 이번 사태에 악영향을 준 것 같아요.
그날 만난 스데반 집사를 사울이 집중 타깃으로 노린 성싶습니다.
스데반 집사에게 우박처럼 날아드는 돌 세례를 맨몸으로 막으려다가 몇 사람이 큰 부상을 입었고, 사마리아에서 온 젊은이는 머리가 깨져서 다음 날 죽었습니다.”
바라바의 눈동자가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