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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세계에서 마주하는 진실의 목소리.
장편 「소설 바라바」를 비롯한 이야기의 숲.

소설 바라바

바라바 474화 ★ 헤로디아 왕비의 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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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바 474화 ★ 헤로디아 왕비의 서신

ChatGPT Image 2026년 2월 25일 오전 08_34_34.png

 

만찬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운 루브리아는 이제 더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황제의 뜻을 거역할 수 있는 방법은 바라바 님과 하루속히 결혼하는 것이었다.

 

다만 지금 원로원에 제출된 성전세 인하 청원서를 황제가 승인해 줄 때까지 시간을 끌었으면 좋겠는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바라바 님의 시민권 문제를 황제에게 부탁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자신의 므네모시네가 되어 달라는 칼리굴라에게 그런 말을 했다가는 자칫 바라바 님이 큰 화를 당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어떻게 황제에게 바라바 님과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는 것을 말 할지 큰 걱정이었다.

 

그렇다고 야반도주하듯이 몰래 어디론가 도피해서 숨어 산다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었다.

 

루브리아가 긴 한숨을 내쉬는데 노크 소리가 들리며 유타나가 들어왔다.

 

어젯밤에 많이 피곤해 보이시던데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눈치 빠른 그녀가 루브리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 황제 폐하와 같이 있는 자리는 신경이 많이 쓰여.

 

아빠는 집무실로 출근하셨나?”

 

오늘 새벽에 긴급 시찰이 있어서 로마 광장 경찰서로 막바로 나가셨어요.

 

아마 저녁때나 돼서 돌아오실 거예요.”

 

루브리아는 아무래도 지금 상황을 아빠와 오늘 밤이라도 상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라바 님이 시민권을 딴 후 정식으로 결혼 승락을 받으려 했는데 이제 다급해졌다.

 

그 전에 바라바님 을 만나는 것이 물론 급선무였다.

 

오늘 점심에 나사렛 모임이 있지?”

 

, 맞아요. 혹시 아가씨가 잊어버렸으면 말씀드리려 했어요.”

 

유타나가 한 박자 쉬었다가 덧붙였다.

 

오늘 모임은 우리가 음식을 준비해 간다고 했었어요.”

 

, 그랬었구나. 충분히 준비하도록 해.”

 

루브리아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아침은 언제 가지고 올까요?”

 

잠을 못 잤더니 입맛이 없네

 

조금 어지럽기도 하고

 

어머, 탈레스 선생님을 오시라고 할까요?”

 

아니야. 좀 쉬면 낫겠지.”

 

유타나가 방에서 나가고 루브리아는 어제 황제가 한 말들을 다시 하나씩 끄집어내 보았다.

 

생각할수록 엄청난 이야기였다.

 

그는 루브리아에게 애를 낳아달라고 했으며 여차하면 카이소니아와 이혼하겠다는 의사를 강력히 내비쳤다.

 

정식으로 결혼하자는 것과는 다르지만 로마제국 황제의 부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로마제국 다음 황제는 루브리아의 아들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 생각을 하니 순간 가슴에 전율이 일었으나 곧 고개를 크게 가로 저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어떤 남자의 아이를 갖는 것은 그 남자가 황제라 하더라도 나사렛 모임에서 가르치는 순결의 원칙과 어긋나는 일이었다.

 

더욱이 루브리아에게는 천신만고 끝에 다시 만난 바라바 님이 있고 그와의 결혼이 두 사람을 위한 가장 행복한 길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칼리굴라가 며칠 안에 대답을 달라고 했으니 어떻게 말해야 할지가 큰 걱정이었다.

 

바라바 님에 대해 사실대로 말할 수 없으니 머리가 다시 어지러웠다.

 

예루살렘 산헤드린 재판소에서 루고의 가슴에 긴 창이 관통하는 것을 보고 기절한 후 루브리아는 가끔 어지러운 증세가 생기곤 했다.

 

침대에 잠시 누울까 하는데 유타나가 다시 들어왔다.

 

아가씨, 우유라도 좀 드세요. 따스하게 데워 왔어요.

 

그리고 아가씨를 만나러 누가 찾아왔어요.”

 

루브리아가 우유 잔을 입에 대며 누구냐고 눈썹을 올렸다.

 

헤로디아 왕비님의 시녀장이었다고 해요. 저도 본 기억이 나요.”

 

, 대기실에서 기다리게 해. 내가 옷 입고 곧 나갈게.”

 

잠시 후 만난 시녀장은 예전보다 얼굴이 많이 상해 보였다.

 

왕비의 안부를 묻는 루브리아에게 그녀가 외투에서 서신을 꺼내 건네주며 말했다.

 

왕비님은 잘 계십니다만 갈리아 땅이 불편한 점이 많으시지요.

 

제가 지금 루브리아 님을 만난 것은 절대 극비로 해주세요.”

 

서신을 읽은 후 자기에게 연락을 다시 해달라며 지금 거처하는 곳의 주소를 루브리아에게 주고 시녀장은 곧 물러났다.

 

루브리아가 헤로디아 왕비의 서신을 얼른 펼쳐보았다.

 

<친애하는 루브리아에게

 

소식을 들어서 알겠지만 나와 헤롯 전하는 아그리파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갈리아 지역으로 발령을 받았네.

 

여기서는 별로 할 일도 없고 사실상 거의 유배 상태나 같아.

 

우리는 방안에서 루비콘강만 하염없이 바라본다네.

 

백 년 전 시저 장군이 이곳의 총독으로 부임하여 갈리아 땅을 로마의 속국으로 만든 후 그 여세를 몰아 로마로 진격할 때 건넌 강이 바로 루비콘 강이지.

 

주사위는 던져졌다라고 하면서

 

그때부터 성공한 구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말도 생겼을 거야.

 

루브리아도 잘 알겠지만 지금 황제가 우리에게 이럴 수는 없지.

 

지난번에 나한테 받은 달란트만 하더라도 작지 않은 금액이었잖아.

 

칼리굴라가 아직 어려서 세상이 다 자기 것 같이 생각되겠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자기의 잘못을 알게 될 거야.

 

루브리아에게 부탁이 있어!

 

지금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로마에서 루브리아뿐이네.

 

들리는 소문으로는 루브리아가 황제의 총애를 받아 모든 의전을 총괄하는 직책을 맡았다는데 기회를 봐서 황제에게 우리 이야기를 좀 해줘.

 

유대 땅으로 당장 돌아가기는 어렵겠지만 일단 로마 근교로 발령을 좀 내주었으면 좋겠어.

 

나폴리 같은 곳도 좋겠지.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나도 지난번 황제에게 준 것만큼 다시 금품을 제공할 수 있어.

 

돈은 많을수록 더 필요하니까 황제가 내 제의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을 거야.

 

그럼 가까운 시일 내에 진행 상황을 시녀장에게 알려주기 바라네.

 

이 서신은 읽어보고 곧 벽난로에 집어넣도록.

 

- 늘 루브리아를 생각하는 헤로디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