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바 480화 ★ 추방당한 바라바
아그리피나의 집무실은 황제 특별보좌관실답게 크고 화려했다.
안에 누가 계시냐는 루브리아의 질문에 '근위대장님'이라는 여비서의 목소리가 상냥했다.
건너편에서 칼리굴라의 대리석 상반신이 루브리아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화가 난 건지 비웃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가슴이 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모든 일의 배후에 아그리피나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여비서가 안으로 들어가 루브리아가 왔다는 보고를 했고, 잠시 후 카시우스가 나왔다가 그와 가볍게 눈인사만 나누고 깊은숨을 들이마신 후 아그리피나의 방으로 들어갔다.
입으로는 웃지만 눈은 싸늘한 아그리피나가 루브리아에게 자리를 권했다.
날카롭게 두 여인의 시선이 마주쳤고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이 그 사이를 갈랐다.
루브리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유대교 모임에서 체포한 사람들을 풀어주세요.
그들은 절대로 황제 폐하를 비방하지 않았어요.
내가 보장할 수 있습니다.”
아그리피나의 한쪽 눈썹과 입꼬리가 살짝 움직였다.
“루브리아 의전관이 어떻게 보장할 수 있나요?”
“그들은 제가 유대 땅에 있을 때부터 잘 알던 사람들입니다.”
“아, 그걸 진작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지금은 좀 늦었네요.”
루브리아의 가슴이 쿵쾅거리고 숨이 갑자기 막히는 듯했다.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아그리피나가 테이블에 있는 보고서를 집어 들며 말했다.
“여기 보면 그들은 유대교 중 새로 생긴 파벌로서 황제 폐하에 대한 존경심이 없어 보이고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미신을 믿는다고 되어있어요.
허가도 없이 계속 모임을 하고 있었군요.”
“아직 미트라교도 로마에서 정식 종교로 허가를 받지 못했지요.
그렇게 따지자면 키벨레 교 외에는 모두 잡아가야 하겠네요!”
루브리아의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졌다.
“더구나 한 사람은 벌써 풀어주고 모임에 새로 나온 두 사람은 왜 안 풀어주나요?”
아그리피나가 투정하는 어린애를 달래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주 중요한 증거가 있어서지요. 황제를 모독한 증거가…”
그녀가 서랍에서 작고 노란 물건을 꺼내어 루브리아에게 보여주었다.
황금으로 만든 독수리 조각이었고 눈은 큰 사파이어가 박혀있었다.
“이제 아시겠지요? 독수리는 황제를 상징하는데 이렇게 작게 만들어 가지고 다니는 것은 황제를 능멸하는 반역죄에 해당합니다.”
“아니에요. 그들은 유대 사람들이라 그런 것을 모르고 있어요.”
“유대는 로마 영토가 아닌가요? 더욱이 여기는 유대가 아니라 로마입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지요.”
그녀의 싸늘한 목소리가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주었다.
루브리아가 어금니를 앙다물고 침착하려 애썼다.
“그 두 사람은 지금 어디 있나요? 제가 잠깐 면회하고 싶은데요.”
아그리피나가 얼른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대로 이미 곰치연못으로 들어갔다고 말하는 게 좋을지 망설이는데 루브리아의 크고 아름다운 눈이 신경에 거슬렸다.
“그 사람들은 만날 수 없어요. 이미 늦었다고 말했잖아요.”
루브리아의 눈동자가 커지면서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황제 모독의 증거가 확실한 사람들은 곰치연못에 던지는데 어제 벌써 시행되었어요.”
연분홍색 입술로 재미있는 이야기 하듯 말하는 아그리피나의 얼굴이 갑자기 천장에 매달리면서 루브리아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의사를 부르는 소리에 비서실 여직원이 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돌아온 근위대장 카시우스는 따끈한 카모밀 차를 마시며 어제의 일을 찬찬히 생각했다.
유대 모임에서 체포된 두 사람을 은밀히 처형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잠시 후 백부장이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그들이 근위대장님을 잘 안다고 하는데 그냥 처형할까요?”
누구일까 하는 호기심에 가보았더니 유대에서 로마로 오는 배에서 만난 젊은이들이었다.
두 사람 모두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곧 풀려날 것으로 믿고 있었다.
백부장을 따로 불러 설명을 들으니 루브리아 의전관과도 아는 사이라고 했다.
아그리피나가 황제의 지시라며 은밀히 없애 버리라고 했지만,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나서 조금 망설여졌다.
더구나 루브리아와 어떤 사이인지도 신경이 쓰였다.
한참 고민을 하고 있는데 루브리아가 마침 찾아온 것이었다.
처음에는 모르는 척하고 그녀에게 적당히 말하고 있는데 아그리피나가 다시 불렀다.
철저한 성격의 그녀가 최근 티베레강에서 떠오른 시신들이 시민들의 입에 오르내리니 곰치 연못에 던져 흔적을 없애버리라는 지시였다.
다시 루브리아가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올 때만 해도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그녀의 수심에 잠긴 얼굴과 크고 아름다운 눈을 보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속으로 고민하고 있는데 루브리아가 황제를 만나려고 일어섰다.
그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황제를 만나지 말라고 했고 그렇게 말한 이상 책임을 져야 했다.
유대인 두 사람을 없애라는 말을 황제에게 직접 듣지 않았으니, 그들을 유대로 돌려보내고 다시는 로마에 나타나지 말라고 하면 될 것이다.
카시우스가 바라바와 호란이 갇혀 있는 곳으로 다시 가서 그들을 만났다.
두 사람은 이제 바로 풀려날 것으로 생각하는 성싶었다.
“내가 지금 하는 말에 어떤 질문도 하지 말고 그대로 반드시 따라야 하오.”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이 급속히 굳어졌다.
“당신들은 로마에서 추방될 것이오.
이것은 황제 폐하를 모독한 죄 중 가장 가벼운 것이오.
다시는 로마 땅에 나타나면 안 되고 이를 어길 시에는 목숨을 잃게 될 것이오.”
근위대장이 바라바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우리 근위대의 기록에는 두 사람은 사망한 것으로 표시될 것이고 시신은 찾지 못함으로 처리될 것이오.
두 사람은 즉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배에 강제로 태워질 것이고 만약 누가 오늘의 일을 묻는다면 모두 잊었다고 하기 바라오.
나는 두 사람을 만난 적이 없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