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바 487화 ★ 게멜루스 사망
다음 날 루브리아는 황제를 만날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바라바 님이 살아있는 것이 확실한 순간부터 이 세상에 아무 두려움이 없어지고 스스로 해야 할 일이 정리되었다.
또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모든 것이 나사렛 예수님이 미리 구원의 손길을 뻗어주시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바라바 님을 살려주신 것 같았다.
루브리아는 유대와 그리스 사절단의 주장과 폭동 사태의 배경을 정리해 보고서를 작성했고 맨 뒤에는 본인의 사직서를 첨부했다.
칼리굴라의 요청, 그의 모네모시네가 되어 달라는 부탁을 거절하는 간단한 표시였다.
오늘따라 황제의 집무실 출근이 늦어지고 있는데 의전비서가 급하게 루브리아의 방으로 들어왔다.
“엊저녁에 게멜루스 님이 사망하셨답니다.”
루브리아는 무언가 잘못 들은 것 같아 멍한 얼굴로 비서를 바라보았다.
얼마 전 네로 아기 탄생을 축하하는 모임에서 만났던 지혜롭고 의젓하던 청년, 18살의 다음 황위 계승자의 이름이 게멜루스 아닌가.
“전차 모는 연습을 하시다가 떨어져서 큰 부상을 당했는데 결국 회복이 안되어서….”
보고하는 그녀의 동그란 눈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그날도 자신은 전차 시합을 준비하기 위해 4마리 말을 동시에 모는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게멜루스의 희망에 찬 얼굴이 떠올랐다.
“황제 폐하는 게멜루스 님의 댁으로 바로 가셨고 오늘은 여기에 나오지 않으신답니다.”
사태의 심각성이 인식되면서 루브리아의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당장 아빠를 만나서 상의하는 게 좋을 듯싶었다.
잠시 후 루브리아는 집에 도착해서 아빠가 계시는 공관 사무실로 들어갔다.
아빠의 집무실에서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간부들의 모습이 복도에 보였고 루브리아가 곧바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잘 왔구나. 소식 들었지?”
“네, 아빠. 어떻게 그런 엄청난 사고가 일어날 수 있을까요.”
로무스 대장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지며 짧은 침묵이 흘렀다.
“우리가 아는 정보로는 게멜루스 님은 어제 전차 연습을 하지 않으셨다.
오늘 아침 황제 비서실에서 그렇게 공식 발표를 한 거지….”
“어머, 그럼 어떻게 된 거예요?”
“음, 아직 나도 정확한 사인은 모른다. 다만….”
루브리아가 아빠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숨을 멈추었다.
“어제 점심에 아그리피나의 집에서 식사를 하셨더구나….”
“그럼 아그리피나가 그를 독살한 건가요?”
루브리아의 입에서 쉽게 독살이라는 단어가 나왔고 아빠의 시선이 놀란 듯 그녀를 보았다.
“그런 이야기는 함부로 입 밖에 내서는 안 된다.”
“그럼요. 걱정 마세요. 근데 이런 비밀이 영원히 지켜지지는 않을 텐데요.”
“음, 지금은 칼리굴라 황제의 인기가 대단히 높아서 별문제 없을 거다.
그런 소문이 돌아도 사람들이 헛소문일 거라 생각하지.”
“네. 그럴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지를 수가 있겠지요.
누가 했는지 확실치는 않지만요….”
아빠가 침통한 표정으로 길게 한숨을 내쉰 후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카시우스 근위대장과 아그리피나의 사이가 보통이 아닌 것 같아.
근위대장이 나이가 60에 가까운데 부인이 없고 전부터 남색을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인데 아그리피나와 최근에 각별한 사이가 된 것 같다.”
“그녀는 남편이 있잖아요. 네로 아기도 낳았고요.”
“음, 그렇지.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상대가 악마라도 동침을 할 수 있을 거다.
근위대장의 협조나 암묵적인 동의가 없으면 이번 일을 저지를 수 없었겠지.
여하튼 티베리우스 선황제께서 돌아가신 지 1년도 안 돼서 이런 참극이 발생했구나.
다음 황제 계승권자인 동시에 칼리굴라 황제의 양자로까지 법적 조치를 하셨지만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어…”
티베리우스 황제의 강인한 독수리 같은 얼굴과 게멜루스 님의 젊고 순박한 얼굴이 떠올라 겹치면서 루브리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내 임기가 반년이 남았는데 곧 사표를 내고 시골로 내려갈까 한다.”
아빠의 목소리에 피곤이 배어있었다.
“네, 사실은 저도 의전관 일을 고만하려고 했어요. 제가 모시고 내려갈게요.”
“아니다. 지금 우리 부녀가 갑자기 동시에 그만두면 또 무슨 억측을 할지 모른다. 젊은 황제가 워낙 의심이 많아서….”
“그러면 제가 먼저 그만두고 아빠는 조금 시차를 두시는 게 어떨까요?”
루브리아는 칼리굴라가 요구한 므네모시네 이야기는 이제 굳이 아빠에게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내가 먼저 사표를 내는 것보다 그게 낫겠구나.
그런데 예전에 유대 땅에서 만났던 바라바를 얼마 전 중앙 경찰서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 아니?”
“아, 네. 아마 지금은 유대 땅으로 돌아간 것 같아요.”
아빠는 바라바가 그동안 루브리아와 만난 것을 알고 계신 성싶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루브리아가 화제를 바꾸었다.
“아그리피나가 왜 그런 끔찍한 짓을 했을까요? 증거는 아직 없지만.”
“음, 두 사람의 이해가 정확히 맞아떨어진 거지… 황제와 아그리피나….”
로무스가 딸의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게멜루스가 없어지면 황제는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 마음이 편해지고 아그리피나는 네로를 다음 황제로 만드는 데 거쳐야 할 단계가 없어지니까…
더구나 게멜루스가 은근히 인기가 있고 총명하기 때문에 주위에 사람들이 슬슬 모이기 시작했었지.”
“그럼 이번 일은 황제의 지시가 있었다고 봐야겠네요.”
“음, 칼리굴라가 동생에게 직접 누구를 죽이라고 하지는 않았겠지만 암묵적인 지시가 있었을 거야….”
“그런 일들을 황제 대신 하다 보면 아그리피나가 더욱 실세가 되겠어요.”
“응, 지금 원로원에서 로마의 권력 서열 1위가 황제가 아니라는 루머가 떠돌고 있지.”
로무스 대장의 미간이 다시 좁혀졌다.
“아그리피나가 1위인가요?”
“그녀는 3위이고 1위는 드루실라, 2위가 황제야. 칼리굴라는 둘째 여동생 드루실라의 말을 가장 잘 들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