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바 490화 ★ 검투사 마르쿠스
검투사 훈련 과정은 혹독했다.
바라바는 원형경기장의 모래에서 중심을 잡는 법과 상대방의 그물을 피하는 법, 삼지창이나 끝이 낚싯바늘처럼 구부러진 검을 격퇴하는 방법을 배웠다.
맹수들과 싸우는 검투사들은 온몸에 갑옷을 두르고 두 사람이 한편이 되어 이집트 사자나 게르마니아의 곰과 싸웠다.
갑옷 없이 혼자서 사자와 싸워 이기는 검투사는 자유의 몸이 되고 큰돈을 벌지만 대부분은 사자가 사람을 이겼다.
간혹 사자가 죽으면 검투사 편에 돈을 건 사람들은 사자의 간을 바로 나누어 먹을 수 있는데 그것은 매끈하고 단단했으며 따스했다.
뛰어난 검투사들은 질 좋은 식사를 양껏 먹을 수 있었다.
고린도 항구에서 갓 잡은 상어고기나 다랑어는 물론 꿩고기, 멧돼지고기, 상처를 입어서 상품 가치가 없는 그날 잡은 곰 발바닥도 구워서 먹었다.
그러나 일반 검투사들의 주식은 채식이었고 보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경기를 앞두고는 포도주도 마음대로 마시도록 했는데 오래 살아남은 검투사는 경기 후에 마시는 쪽을 택했다.
“죽여라. 목을 베어라!”
군중들의 열에 들뜬 목소리는 검투사 훈련소까지 들려왔다.
훈련소와 원형경기장은 2백 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서 시합이 예상보다 빠르게 끝나면 다음 검투사가 경기장 모래의 핏자국을 치우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간혹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히는 검투사들이 있었고, 이들은 무기 없이 경기장 안에서 들개들과 싸워야 했다.
이놈들은 눈이 회색이고 주둥이는 길었으며 짖지도 않았다.
인간 사냥법을 터득해 바로 뛰어올라 목덜미를 무는 놈과 동시에 뒤에서 다리를 공격하는 들개들에게 오래 버틸 수가 없었다.
배 밑창에서 노를 저으며 족쇄를 찼던 발목은 이제 거의 다 나았고 우선 살아야겠다는 의지로 생선과 고기를 주는 대로 먹은 바라바는 몸값을 하기 위해 곧 시합에 나가야 했다.
호란은 체구가 크지 않아서 검투사로 뽑히지 않았다.
바라바를 따라서 검투사 양성소로 가겠다고 했으나 농장의 노예로 분류되어 고린도 선창가에 있는 창고에서 쇠사슬을 발에 찬 채 헤어졌다.
몇 달간 수염을 깎지 않고 머리를 기른 바라바의 모습은 스스로 보기에도 검투사와 닮아 있었고 갑옷을 입으면 로마의 장군처럼도 보였다.
“바라바, 드디어 내일 시합의 두 번째 경기에 나가게 되었네.
이제부터 당신의 이름은 마르쿠스요, 검투사 마르쿠스!”
대머리 해적으로부터 바라바를 산 사람은 고린도에서 가장 큰 원형 경기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50명 정도 되는 검투사를 두 팀으로 나누어 서로 경쟁하게 했고 각각 훈련 교관도 따로 있어서 승률에 따라 수익을 나누었다.
“나와 싸울 상대는 누구입니까?”
“다마섹에서 온 헬몬이라는 거구의 사내인데 벌써 7전 연승을 하고 있네.”
붉은 팀의 교관 헥터가 잔뜩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목에는 곰이 할퀸 긴 상처가 영광처럼 새겨져 있었고 10년을 넘게 검투사로 살아남아 교관이 된 곰 같은 체구의 사내였다.
상대 선수 이름이 헬몬이라면 갈릴리 북쪽의 눈이 녹지 않는 가장 높은 산이름인데 아마도 그쪽 출신인 성싶었다.
“내가 어제 놈이 싸우는 것을 보았는데 덩치가 크고 힘은 좋지만, 빠르지는 않고 목에 부상이 있는 듯하니 그 약점을 파고들어야 하네.
마르쿠스가 선제공격을 성공시키면 충분히 승산이 있지.”
“내 이름은 왜 마르쿠스입니까?”
“검투사들은 출신 지역의 장군 이름을 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바라바는 로마에서 이곳으로 왔으니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장군의 이름을 딴 것이지.
인기가 좋은 이름인데 며칠 전 그 이름의 검투사가 죽어서 당신이 그 이름을 운 좋게 갖게 된 것이야.”
헥터가 빙그레 웃으며 계속했다.
“검투사들은 그들이 결심하는 만큼 오래 살 수 있지.
내가 그동안 가르친 검투사들 중 당신만큼 모든 기술을 빨리 익히는 사람은 못 보았소.
그런데 한 가지 마르쿠스에게 부족한 것이 있네.”
바라바의 눈썹이 살짝 올라가며 곰 같은 교관을 바라보았다.
“당신의 눈에는 증오가 없어!
맹수의 눈이긴 하지만 복수심이 없단 말이야.
가장 사나운 노예들이 검투사로 살아남는 이유는 승리를 거두고 상대방을 죽이는 즐거움을 알기 때문이지.”
헥터의 목소리에 억양이 없었다.
“이기면 상대방을 꼭 죽여야 하나요?”
“검은 팀의 인원을 줄일수록 우리 붉은 팀의 수익이 많아지니까.
또 군중들이 죽이라는 함성을 지르는데 그것을 거부하면 검투사로서의 인기가 없어지고 돌팔매를 맞을 수도 있지.
처음 출전이니만큼 깔끔하게 처리하면 내가 보너스를 조금 더 지급하겠네.
이 기름은 내일 시합 전에 온몸에 잘 바르고 나오도록 하게.
상처가 나면 피를 멎게 하고 상대방에게 붙잡히면 미끄러지는 작용을 한다네.”
교관이 손에 들고 있던 누런 기름 한 통을 바라바 앞에 내려놓고 방을 나갔다.
작은 창문으로 석양빛이 어슴푸레 기름통을 가로질렀다.
안토니아 감옥에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던 때는 깨진 그릇 같던 자신을 구해 달라는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셨다.
이번에는 검투사로서의 운명이 오로지 자신의 검과 실력에 달린 처지가 되었으나 그래도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싶었고 그동안 로마에서 기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혹시 그래서 다시 깨진 접시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갑자기 사라진 자신이 지금 여기서 검투사 마르쿠스가 되어 내일 첫 시합에 나가는 것을 루브리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만약 내일 헬몬이라는 사내에게 목숨을 잃고 사자 밥이 된다면 바라바의 종적은 아무도 찾지 못하게 될 것이다.
교관 헥터가 말한 대로 자신은 상대가 누구든 죽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몇 번 참석하진 않았지만 나사렛 모임에서 들은 바로는 예수 선생은 원수를 용서하라고 하셨고 십자가에 달리면서까지 상대를 용서하셨다.
하지만 그런 예수 선생의 가르침을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은, 끝까지 그분을 십자가에 매달았다.
눈을 감으니 루고의 혈색 좋은 얼굴이 떠올랐다.
“죽여라. 십자가에 매달아라!”
갑자기 귀에서 안나스 제사장의 목소리가 군중들의 함성처럼 들렸다.
이 시간에는 그날의 가장 큰 경기가 마지막으로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