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은 나를 건강하고 상쾌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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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인류 - 소크라테스 가상 인터뷰

wy 0 2018.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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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BC 469 –399 

 

Q: 선생님이 하신 말씀 "너 자신을 알라" 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 말의 의미는 어렵습니다.

 

A: 그동안 그리스 철학의 주요 과제는 우주의 법칙이나 신의 뜻을 알고자 하는 거였소. 

그런데 나는 인간이 먼저 인간을, 특히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Q: 어느 가수의 노래 가사 중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이만큼 자기를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까요?

 

A: 그 가수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좋은 가사군요

자기 자신에 대해 알려고 해 보면 막상 쉽지 않고, 자기가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도 알게되지요.  

이것을 아는 것이 진리를 탐구하는 첫 걸음이 되는 거에요.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은 인간 위주의 철학과 사고를 강조 한 것인데 사실 이 말은 내 좌우명이긴 했어도 내가 처음 한 말은 아니었소.

원래 그리스 델포이 신전에 써 있던 말인데 누가 처음 했는지는 확실치 않아요.

Q: 선생님은 평생 채식을 하셨지요?

 

A: 그랬지요. 만약 우리가 육식을 계속 추구한다면 여러 문제점이 생길 거요

내가 제자 글라우콘과 나눈 대화가 있는데 여기 소개하도록 하지요.

 
소크라테스: 육식을 한다는 것은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살아 숨 쉬던 하나의 생명체, 그들의 눈 속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본 가엾은 동물을 죽이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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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우콘: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이렇게 생명체를 물건으로 전락시키는 행위는, 우리가 행복을 성취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겠는가?

글라우콘: 우리의 행복 추구에 방해 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이런 생활 방식을 추구한다면 병원에 더 자주 가야 하지 않겠는가?

글라우콘: 네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우리가 육식 습관을 추구하고 이웃들까지 이를 따라한다면, 서로가 부족한 목초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는가?

글라우콘: 그것을 피할 수 없겠군요.

소크라테스: 우리가 이렇게 욕망을 추구한다면 행복을 얻을 수 없고, 올바른 사회도 이룰 수 없지 않겠는가?

글라우콘: , 이룰 수 없겠군요.

 

Q: 질문을 던져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선생님 특유의 화술을 듣다 보니 저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이미 2500년 전에 생명, 행복, 건강에 대해 이러한 말씀을 남기셨는데, 저희는 아직도 선생님 말씀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A:
요즘 세계적으로 채식 운동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서 다행이요.

 
이제 육식으로 인한 환경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 되었더군.

Q: . <채식의 노래> 라는 곡이 있는데 가사가 선생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 쓴 것 같습니다

 

1)채식은 나를 

건강하고 상쾌하게 해준다

기름진 음식보다 신선한 야채

단백질도 현미나 두부로 충분
  

고운 피부 웃는 얼굴 채식 가족

우리 모두 오늘도 즐거운 채식

 

2)채식은 지구

물과 공기 깨끗하게 해준다

가축들 뿜어내는 메탄가스가   

자동차 메탄가스 만큼 많구나  

지구 환경 개선해요 채식 가족

우리 모두 오늘도 즐거운 채식  

 

3)채식은 사랑 

살려 하는 생명들을 살린다.  

도살장 송아지가 눈물 흘리고

코로나로 사람도 눈물 흘리네   

생명 사랑 실천해요 채식 가족

우리 모두 오늘도 즐거운 채식

 

A:  노래를 들어보고 싶으니 다음에 한 번 불러봐요.

 

Q: 지금 유튜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0tNbo99w6k


Q: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다음으로 잘 알려진 말씀은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독배를 마시기 전 하신 말씀이라는데 아직까지 해석이 분분합니다.


A:
내가 재판을 받고 사형이 확정됐을 때 친구 크리톤이 탈옥을 제안했지요

그때 내가 악법도 법이다(Dura lex, sed lex).”라는 말을 남겼다고 알려졌는데, 사실 내가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어요.

당시 법원이 나에게, 나의 소신을 철회하면 살려준다고 했을 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고, 또 재판 과정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말이 이렇게 해석된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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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죽음, 자크루이 다비드 1787

사실 나에게 내려진 사형 판결은 소수의 사람이 밀실에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소. 

당시의 재판법에 따라 적법한 절차를 밟으며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판결이었소.


당시 아테네 최고의 지성인이자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 받던 나는, 시민들과 끊임없이 토론을 하여 그들의 무지를 일깨우고자 노력했었지.

 
이는 그 재판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나는 수 백명의 배심원들을 상대로 내 철학을 설파 하였소.

따라서 내가 아무리 옳다고 하여도, 사형 선고가 내려진 것은 아테네 시민 다수가 나를 확실히 거부했다는 의미였지요. 

그런 마당에 과연 '너희들이 틀리고 내가 옳으니까 나는 유죄 판결에 동의할 수 없다'라고 주장 할 수는 없었지요.

결국 아테네의 스승을 자처하며, 시민들의 무지를 일깨우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한 나는 실패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소.

 

Q:당시 선생님은 어떤 죄목으로 기소되었나요?

 A: 나는 젊은이들이 국가 제도를 경시하고,부모나 어른을 공경하지 않게 했다.라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지요.


유죄 여부를 판결하는 1차 배심원단 평결에서 유죄 281표 대 무죄 220표가 나와 유죄가 결정되었지만, 표차가 그리 크지 않았고 사형까지 선고될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었소.
 

그러나 나는 판결이 끝나자 배심원들에게 당당하게 이런 말을 했지요.

 

나는 숨을 쉬는 한, 그리고 지적 능력을 잃지 않는 한, 철학을 가르치고모든 사람을 위해 진실을 밝히는 일을 멈추지 않을 거요.

 

그러니 여러분, 그대들이 나를 사면하든 말든, 나는 나 자신의 행동을 바꾸지않겠소. 

 

Q: ,여하튼 선생님은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걷어찬 후 의연하게 독배를 받으셨지요.

 

이러한 과정을 쭉 살펴보면,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선생님의 철학적 기획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A: 당시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BC431~404)에서 스파르타에 패했을뿐더러 심한 역병으로 사회 혼란을 겪고 있었지요. 

 

이런 때 아테네 사회에는희생양이 필요했고,나는 죽음을 의연히 받아들임으로써 나의 철학을 끝까지 관철시켰어요.

 

Q: ,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니 시대 상황이 조금 이해가 됩니다.

선생님께서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알려진 데에는 일제강점기에 경성제국대학 법학부 교수였던 '오다카 토모오'(尾高朝雄)의 영향이 컸습니다.

오다카 토모오1 Screenshot 2023-10-23 at 06.16.00.JPG

오다카 토모오 

그는 1937년에 펴낸 『법철학(法哲學)』에서 ‘실정법주의’를 주장하면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하였기 때문이며,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실정법주의’는 현행 법률이 완전무결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독일의 법사상인데, 일본도 이를 중요시 했지요.

오다카 교수는 경성제국대학 시절 한국인 제자를 많이 양성했고, 그의 제자들이 해방 이후 한국 법학계의 중심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선생님이 독배를 마신 것에 대한  오다카의 해석에서 나온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유신 헌법이나 제5공화국 헌법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좋아했던 말이기도 하지요.

A: 한국사람들이 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많이 알면 좋겠소.
 

Q:,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글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는 죄송하지만, 선생님은 악처를 둔 분으로도 잘 알려졌습니다.

A: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나에게 아내인 크산티페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 후 물을 끼얹었은 적이 있지요. 

그 때 내가 천둥 친 후 비가 온다고 했다는 일화 때문에 특히 그런 것 같소. 하하.

나는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용모가 준수하지 못했고, 석공으로 가난하게 살았지.

50이 다 된 나이에 30살 정도 어린 그녀와 결혼한 나는 돈을 받아야만 학문을 가르치던 소피스트들을 비판했소.

그러면서 집안 일에는 완전히 무관심했고 돈도 별로 벌지 못했지. 

낮에는 파르테논 신전 건설 현장에서 돌을 다듬었고, 해가 저물면 주변 사람들과 밤새도록 토론을 하였다오. 

그러니 아내의 입장에서는 별로 탐탁하게 여겨지지 않았겠지.하하.

 

Q: 선생님은 어떤 책도 쓰지 않으셨는데 제자 중 플라톤이 쓴 "변명"이 선생님의  철학을 가장 잘 나타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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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변명"을 플라톤이 쓸 때는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  패했을 때였지요

이 전쟁에서 스파르타는 과두정치를 대표했고, 아테네는 민주정치를 대표했기 때문에 아테네의 패전은 어떤 의미에서 민주정치의 한계를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었소.

내가 유죄를 선고 받고 죽게 되는 것을 보면서, 당시 20대였던 플라톤은 민주정치가 우매한 대중에 의해 휩쓸리기 쉽다는 생각을 했겠지. 

그래서 민주정치를 비판하면서  분개했을 테고.

그는 철학자들이 정치를 하는 소위 귀족주의 정치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소.

Q: 당시  선생님이 비판하시던 소피스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A: 소피스트들은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소. 

즉 모든 현상은 귀에 걸면 귀거리 코에 걸면 코거리 라는 식이었지요.

그들에게 지식은 잘 사는 지혜이기 때문에 돈을 내고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했으며, 정의나 진리도 말 잘 하는 사람의 편이니 웅변이나 변론을 잘 하는 방법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지요.

그들은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권력이 정의를 만들어낸다" 라는 말들을 했어요.

Q: , 지금도 그런 소피스트들이 많고, 어떤 면에서는 그들이 세상을 더 현실적으로 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선생님은 절대적인 진리를 탐구하시며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평생 가르치고 사랑하셨는데, 그들에게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기소 죄목은 아테네의 신을 믿지 않고 젊은이들을 미혹하여 타락 시킨다는 것이었지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공자님,  부처님,  예수님과 더불어 세계 4대 성인으로까지 추앙 받으십니다.

A: 나는 책을 한 권도 직접 쓰지 않았지만, 내 사상이  나의 수제자 플라톤에게 그대로 이어져 서양철학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렇게 된 것 같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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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광장의 소크라테스

Q:  선생님은 동양의 공자님처럼 서양 철학에서는 절대적인 분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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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철학자인 화이트 헤드가 "서양의 모든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라고 했을 정도이니 선생님의 영향력을 알 것 같습니다.

저도
진리 탐구의 철학에 매진하셨던 선생님보다는 소피스트에 더 가까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시 제 자신을 알기가 힘듭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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