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은 나를 건강하고 상쾌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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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체스코 가상 인터뷰

wy 0 2018.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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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1181-1226

 

 

Q: 성 프란체스코 선생님, 성인께 선생님이라 하는 것을 용서해 주세요.

선생님은 젊은 시절 회심을 하셨지요?

 

A: 나는 부유한 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 화려하고 사치한 생활을 했어요.

 

한 때는 기사가 되려고 전투에 참가해서 투옥 되기도 했고 석방 된 후에는 중병을 앓았는데 젊은 나이에 많이 아프다 보니 그 동안 나의 생활이 허무하다는 것을 느꼈지요.

 

그러던 중 그리스도의 환시를 보고  "내 교회를 고치라"는 말씀을 들었어요.

 

또 그 동안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나병환자를 우연히 보고서 말에서 내려와 사랑의 포옹을 통하여 지난 날의 생활을 청산하였지요.

 

그 후 나는 복음의 말씀 그대로 살기로 결심했으며, 부친의 유산을 포기하고 오로지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살기에만 전념했어요.

 

Q: 선생님께서 어떤 말씀을 예수님께 들었는지 좀 더 말씀 해 주세요.

 

A: 1205년 말 나병환자를 만나고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에게 준 나를 이해 못하시는 아버지와의 갈등이 심해지던 때에 황폐한 다미아노 성당에 있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나에게 말씀하셨어요.

 

"프란치스코야, 가서 나의 집을 지어라. 나의 집은 거의 다 무너져 가고 있다."

 

나는 그 후 철저하게 가난하게 살았고 주님의 말씀대로 그 성당의 무너진 벽돌을 쌓기 시작했지요.

 

Q: 그런 말씀이 있으셨군요.

 

선생님은 채식을 하셨지요?

 

A:  인간은 모든 생명에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의 창조물들을 동정과 연민의 품에서 제외시키는 사람들은 그들의 동료 인간들에게도 그렇게 대할 수 있겠지요.

 

Q: 선생님은 외국 선교도 하셨지요?

 

1213년 모로코 선교를 하였고, 시리아와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가기를 원했지만 배가 파선하고 심한 질병으로  좌절되었으며 모슬림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그들을 찾아가기도 했었지요.

 

1219년에는 십자군을 따라 이집트로 갔다가 술탄 말렉크를 만나 십자군 전쟁의 평화로운 해결을 위한 대화를 시도 했으나 포로가 되었어요.

 

Q: 고향 '아시시' 에서 선생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11명이 되자 선생님은 복음체의 회칙을 쓰시고 당시 추기경에게 설립인준을 요청 하셨습니다.

 

A:  내가 쓴 회칙이 좀 엄격해서 그대로 지키기가 어렵다고 생각 한 추기경은 교황에게 보여 드리자고 했어요.

 

  로마에서 우리가 교황을 만나기 하루 전날 교황이 꿈을 꾸었는데, 교회가 넘어져 있었고 어느 가난한 수도자가 어깨로 받치고 있는 모습을 본 후 그가 나라고 생각하시고 회칙을 승인하셨지요.

 

Q: 선생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면서 사셨지요?

 

A: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전하라. 너희 주머니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도 가지지 말며  가방도 신도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하셨는데 나는 그대로 살려고 하다 보니 후세에 내 그림을 보면 늘 맨발로 다닌 그림이더군요.

 

Q: 선생님은 예수님 이후 가장 예수님을 닮은 분이라 칭송 받으시고 새들이나 짐승들과도 대화를 하시는 장면이 벽화나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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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과 대화하는 성 프란시스코 동상

 

A: 나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분의 삶과 많이 닮기를 소원 했어요.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입으신 양손과 양발 그리고 옆구리 상처까지 내 몸에 나타나게 되지요.

 

그러니까 내가 세상에서 44년을 살게 되는데 42살 때 그런 이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Q: 네. 그 후 선생님의 뜻을 따라서 작은 형제회, 클라라 수녀회등이 이어져오고 있으며 심지어 다른 기독교 교파에서도 존경의 뜻으로 성 프란시스 수도회라는 수도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고향, 이태리의 작은 도시 '아시시'는 아름다운 성당과 선생님의 발자취를 보러 오는 사람들로 세계적인 관광명승지가 되었고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도 선생님의 성함을 따서 지었습니다.

 

현대 음악가 메시앙이 4시간 넘게 걸리는 오페라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를 작곡하였는데 아마 이 분도 새를 좋아하고 경건한 기독교인으로서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요한계시록의 환시를 보신 분이라 이 오페라를 작곡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어떤 말씀을 주위 사람들에게 당부 하셨는지요?

 

A: 1226년 봄 나는 몸이 많이 아프고 이제 하나님께 갈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했지요. 

 

그리하여 유언을 하였는데 "나의 회개와 복음적 소명에 대해 주님께 드리는 뜨거운 감사와 지극히 높으신 분이 친히 홀로 형제회를 창설하셨다는 내용이었지요. "

 

나는 초창기의 완전한 가난, 단순, 겸손을 회상하며 특히 육체 노동에 대한 기쁨을 회상하였고, 모든 형제들이 어떤 일에든 종사하고 일할 줄 모르는 형제는 일을 배우기를 권면 하였지요.

 

Q: 선생님께서 임종 하실 때 클라라 성녀님이 읽어주신 요한복음 수난기를 읽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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