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多夕) 사상으로 풀어낸 종교간 소통, 윤정현신부 : “만약 기독교가 동쪽으로 먼저 진출했다면 다석의…
고창 산골짝 움막 집에서 윤정현신부를 만났다. 전기, 수도가 없는 산속에서 주변의 돌을 하나씩 고르고 진흙을 으깨어 2평 반짜리 집을 손으로 올렸다. 영국 버밍엄 대학에서 다석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성공회 신부’라는 울타리를 벗은 지 오래다. …
스쳐 지나가는 인연 속에서 발견한 기록들.
사람과 사람 사이, 그 뜨거웠던 순간의 기억을 나눕니다.
고창 산골짝 움막 집에서 윤정현신부를 만났다. 전기, 수도가 없는 산속에서 주변의 돌을 하나씩 고르고 진흙을 으깨어 2평 반짜리 집을 손으로 올렸다. 영국 버밍엄 대학에서 다석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성공회 신부’라는 울타리를 벗은 지 오래다. …
전주 시내에서 ‘전주비빔밥’으로 유명한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고, 이남곡선생이 살고 있는 '장수'로 향했다. 덕유산을 끼고 무주, 진천, 장수가 모두 계곡이 깊어서 ‘무진장’이라는 말이 생겼다. 그 중 장수군(長水郡 )은 특히 무분별한 개발에서 벗어나 여전히 깨끗한 공기와 맑은 …
20여년 전 어느 맥주집에서 김훈 작가의 노래를 들었다. ‘고향의 그림자’라는 옛날 노래인데 부르기 쉽지 않은 곡이다. 그의 노래는 구성지며 단아했다. 몇 년 후 ‘칼의 노래’가 새로운 문장가의 탄생을 알렸다. 우리의 정서를 구구절절 엮으며, 정곡을 찌르는 수식어로 꽉 찬…
전남 순천은 용산 역에서 KTX로 두 시간 반 거리였다. 호우주의보가 호우경보로 바뀌면서 남쪽으로 갈 수록 억센 비를 뿌렸지만 이 시대의 멘토 이현주선생을 만나러 가는 마음은 산뜻했다. 그의 부인이 주관하고 연주하는 바로크 음악을 순천대학 강당에서 듣고, 다음 날 오후 시내 골목에 있…
철원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포천으로 뚫린 새 길을 강남에서 자동차로 2시간을 달리니 도착했다. 개성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철원, DMZ의 봄은 이미 지났고 녹슨 기차 길에 녹음이 울창했다. 평화학교를 안내하기 위해 마중 나온 정지석박사가 온화한 미소로 필자를 반겼다. 그는 퀘이커 교도이고 국경선…
한돌님을 만나러 일산에 왔다. 일산 시내 낮은 산, 벚꽃 나무가 내려다보이는 정자 밑에서 김밥과 막걸리를 먹으며 오후 내내 대화를 나누었다. 공기는 전 날 내린 비로 싱그러웠고 편안한 구름이 걸려있는 산마루에는 봄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의 얼굴을 온화한 바람결이 …
원주희목사는 사무실 한 켠에 딸린 작은 접견실에서 필자에게 앉으라고 권하며 본인의 의자에 방석이 있는 것을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 엉덩이가 아파서 방석을 깔았다고 설명을 하는 그의 얼굴이 약간 마른 듯 싶었다. 원목사는 어떤 질문에도 유머를 섞어가며 막힘 없는 대답으로 호…
97세의 박재훈 목사님은 일시 귀국 후, 영등포에 있는 요양병원에 머무셨다. 휠체어에 실린 몸으로 방송사 인터뷰를 다니느라 바쁘시다. 3/1-2일 박목사님이 작곡하신 오페라 ‘함성 1919’가 여의도 KBS홀에서 초연된다. 최: 박재훈 목사님, 뵙게 되어서 기…
독일의 ‘빌리 브란트’ 하면 떠 오르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동독을 비롯한 공산국가를 향한 ‘동방정책’으로서 독일 통일의 기초가 된 그의 외교노선이다. 브란트는 1969년 총리 취임 연설에서 “독일에는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한다. 독일 민족은 협력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
“이 돌은 조남철이 와도 못 살려! ” 살 수 없는 자신의 돌을 묵묵히 들여다 보기만 하는 상대에게, 조 아무개가 와도 안 되니 빨리 항복하라는 독촉장이다. 한국 현대 바둑의 아버지 ‘조남철’은 이렇듯 이름 자체가 대명사…
윤이상선생 독일 집 방문과 귀국 하루 전 취소 윤이상선생은 항상 고국을 잊지 않았다.북한과 오랫동안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그는 남북한을 모두 고국으로 생각했던 민족주의자였다.예음 문화재단에서 그의 귀국을 거의 성사 시켰는데, 예기치 못한 장애가 발생하여 귀국도 무산되고, 친필 악보들을 한국으로 가져 오…
드디어 호킹 박사가 작심을 한 것 같다. 그는 최근 “우주는 신이 창조하지 않았고 무에서 만들어졌다” 고 말했다. 약30년 전, 호킹 박사를 한국에 처음 초청했을 때의 발언과는 달랐다. …